금리 상승=채권가격 하락…채권을 '정기예금'으로 이해하면 쉬워
최근 기사들을 보면 "미국 채권시장이 금리 급등세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장기금리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포트폴리오 손실 규모는 더욱더 커질 것"이라고 하는데요. 금리 급등이 채권시장에 왜 위협인지,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게 왜 채권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초래한다는 건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는 건 거시경제를 배울 때 무조건 외워야 하는 법칙과도 같습니다. 금리와 채권가격이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죠?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치도 높아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거예요. 이러한 매커니즘에 대해 주식 초보자들의 거시경제 선생님으로 통하는 오건영 신한은행 WM그룹 부부장이 '정기예금' 개념으로 쉽게 설명하셨더라고요.
채권을 정기예금이라고 생각해봅시다. 1000만원을 들고 연 8% 금리의 정기예금에 가입했습니다. 1년 이자는 80만원으로, 1년 뒤 원금과 이자를 합쳐 1080만원을 돌려받게 되겠죠. 그런데 다음날 정기예금 금리가 폭등해 20%가 됐습니다. 만약 오늘 1000만원을 들고 가입했다면 1년 뒤 원금과 이자로 총 120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싶다고요. 직원은 해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해당 정기예금을 다른 사람한테 매도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1000만원에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90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은 있습니다. 900만원으로 연 20%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1년 뒤 1080만원을 받겠죠. 즉, 1000만원짜리 정기예금의 가치는 금리가 오르면서 900만원이 된 것입니다.
반대로 금리가 내려갈 때는 채권 투자자가 이익을 봅니다. 1000만원으로 연 10% 금리의 정기예금에 가입했습니다. 1년 뒤 1100만원을 받을 수 있겠죠. 그런데 다음날 금리가 연 1%로 폭락합니다. 지금 정기예금에 가입한다면 1년 뒤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1010만원입니다. 누군가가 연 10% 금리로 가입한 1000만원짜리 정기예금을 1090만원에 사겠다고 합니다. 1090만원으로 연 1%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1년 뒤 1100만원을 받을 수 있거든요. 1000만원짜리 정기예금의 가치는 금리가 하락하면서 1090만원이 됐습니다.
해당 논리로 보면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단기채 투자자보다 장기채 투자자들이 더 큰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금리 급등으로 장기채를 잔뜩 들고 있던 증권사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실적이 반토막 나기도 했습니다. 실적을 선방한 증권사들은 "장기채를 빨리 매도하고, 단기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만든 것이 비결"이라고 밝히기도 했어요.
1000만원을 가져가서 연 5% 금리를 주는 정기예금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금리가 다음날 15%로 올랐습니다. 전날 가입했으면 매년 50만원을 이자로 받았을 거고, 이날 가입했다면 연 150만원씩 이자를 받을 수 있겠죠. 만약 해당 정기예금이 1년짜리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10년짜리였다면? 오른 금리가 10년 동안 유지된다고 하면 매년 100만원씩 10년 동안 손해를 보게 됩니다. 장기채 투자자들은 눈물이 나겠죠.
채권의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기준금리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채권값이 오르겠다고 생각하고 미리 채권을 사두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채권값이 상승합니다. 만약 예상과 다르게 기준금리가 동결된다면 투자자들은 채권을 팔 것이고, 그럼 채권 가격은 하락합니다. 기준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채권값이 하락하기 때문에 매도물량이 늘어나면서 채권값이 떨어지겠죠.
그래서 기준금리가 오를 것 같을 때는 채권금리가 먼저 움직입니다. 지난해부터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분위기가 감지되자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았습니다. 뒤따라 3년물 금리도 올랐죠. 즉, 채권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습니다. 만약,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채권가격이 올랐다(채권금리 하락)면 이는 기준금리 상승세가 꺾일 것이란 시장의 판단이 들어간 결과입니다. 기준금리 방향이 궁금하다면 채권 시장을 잘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