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에서 이어집니다)
지금 제주도는 고사리철이다. 요 며칠 내린 비를 제주에선 ‘고사리 장마’라고 했다.
작년 이맘때였다. 새벽 4시까지 모자, 등산화, 잠바와 고사리 담을 가방과 목장갑을 지참하고 문 앞에 나와 있으라는 ‘고사리 스승님' 지시를 받고 잠도 덜 깬 그 새벽에 문 앞에 서 있다가 차에 태워졌다.
"데려는 가지만, 여기가 어딘지는 알려줄 수 없어."
“예예, 암요 제가 그걸 알아 낸들 뭐 혼자 산을 오르겠습니까? 보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사리 스승님은 차를 요래조래 알 수 없는 곳으로 몰더니 어느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 주차했다. 고사리 스승님 중 한 분은 제주 토박이에 정말 고사리의 고수중 고수였다. 어디에 고사리가 많은지 어디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고사리 명소 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스승님은 운전을 내내 맡아왔기 때문에 진짜 고수 스승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두 분의 비장함에 머리가 조아려질 정도였다. 그! 고사리 명소에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지만 않았지 거의 납치되는 수준으로 그곳이 어딘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두 ‘고사리 스승님’ 뒤를 가볍기 그지없는 발걸음으로 따라 올랐다. 언덕 위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아직 동도 채 트기 전 들판에 도착하기도 했지만, 내 눈엔 아무것도 뵈지 않았다.
"스승님, 고사리가 어딨단 말입니까?"
두 스승님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발아래를 가리키고는 흩어져 각자의 고사리 가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래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올라와 있는 통통한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사리를 발견하고 꺾는 게 얼마나 재밌던지, 뱀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러다 사람들이 길을 잃겠구나!'
잠시뒤, 스승님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슬슬 걸어 다니며 우아하게 고사리를 꺾는 스승과 달리 나는 네발로 기어 다니며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욕심이 발동해 마음은 급하고 몸이 안 따라줬던 거였다. 고사리는 참 신기했다. 분명 그 주변에 있는 걸 다 따고 지나갔다 싶어도 뒤돌면 왔던 자리에 새 고사리가 올라와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갈 시간이야."
어느새 해가 떴다. 이제야 고사리가 잘 보이기 시작했는데, 두 스승은 미련도 없이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작년 고사리를 꺾던 이야기이다. 그때 꺾어놓은 고사리를 큰솥에 넣어 쓴 물을 빼고 소분해 냉동실에 가득 넣어두고 해먹은 고사리 파스타만 몇 그릇인지.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님들은 곧 가야 하니 준비를 하고 있으라 말했지만, 지독한 독감으로 4월 한 달을 통으로 날려버린 나는 따라나서지 못하고 스승님이 힘들여 꺾어 손질까지 마친 고사리를 염치없이 받아서 먹고 있는 중이다. 다행인지 아직 날씨가 쌀쌀하여 고사리가 많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담주엔 반드시 떠날 것이니, 몸관리를 단단히 해 놓으라는 고사리 스승님의 분부대로 내일은 다시 병원에 가서 링거라도 맞고 와야 할 것 같다.
(다음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