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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03. 2023

4화. 잘린 나무에 새싹이 돋았다.

(이전글에서 이어집니다, 불편한 이야기 일수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저 멀리 작은 빛도 볼 수 있었다. 절망이 심연까지 내려갔을 때 '희망'을 보았고,

난생처음 ‘꿈'이 생긴 때도,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였다.


결정적으로 내가 PTSD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던 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났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든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불 꺼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내가 어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 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왜소한 체격의 12살 아이를 단숨에 제압한 엄마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가죽벨트에 감긴 목을 풀려고 사지를 바둥대던 내 모습은 어쩐 일인지 내가 바라본 3인칭 시점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동안, 죽으라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왔고, 부엌에서 막내 이모가 뛰어들어 오는 걸 보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 뒤로 뭔가 기억이 깨졌고, 일부는 하얗게 지워졌지만, 뚜렷이 남은 기억은 그다음 날 일이었다. 선명한 목 졸림 흔적, 얼굴 전체를 점점이 뒤덮은 핏멍과 혈관이 터진 안구의 붉은 흰자위. 그 모습으로 여느 때처럼 가방을 메고 등교했지만, 누구에게도 원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누가 너를 이렇게 했니?!'

듣고 싶던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학교를 마치고 다시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던 그 마음에는 아무 색깔이 없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고, 어렴풋 꿈이 하나 생겼었다.


우리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 던 '아줌마'가 있었다. 매를 맞고 발가벗겨져 대문 밖에 쫓겨 난 어느 날이었다. 조용히 대문 밖으로 따라 나온 아줌마는 자신의 카디건을 벗어 내 몸을 감싸주고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었다. 아줌마는 조용히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랫목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고, 내 입에 사탕 하나를 넣어 주었다. 달콤한 사탕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쩌면 사랑은 이런 모습일지도 몰라!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문간방 아줌마'가 보고 싶었다. 그때 처음, 그동안 내가 믿던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아줌마'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이 설렜다.

잘린 나무 밑동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다음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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