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에서 이어집니다, 불편한 이야기 일수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저 멀리 작은 빛도 볼 수 있었다. 절망이 심연까지 내려갔을 때 '희망'을 보았고,
난생처음 ‘꿈'이 생긴 때도,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였다.
결정적으로 내가 PTSD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던 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났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든 엄마는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불 꺼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내가 어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 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왜소한 체격의 12살 아이를 단숨에 제압한 엄마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가죽벨트에 감긴 목을 풀려고 사지를 바둥대던 내 모습은 어쩐 일인지 내가 바라본 3인칭 시점으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동안, 죽으라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왔고, 부엌에서 막내 이모가 뛰어들어 오는 걸 보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 뒤로 뭔가 기억이 깨졌고, 일부는 하얗게 지워졌지만, 뚜렷이 남은 기억은 그다음 날 일이었다. 선명한 목 졸림 흔적, 얼굴 전체를 점점이 뒤덮은 핏멍과 혈관이 터진 안구의 붉은 흰자위. 그 모습으로 여느 때처럼 가방을 메고 등교했지만, 누구에게도 원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누가 너를 이렇게 했니?!'
듣고 싶던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학교를 마치고 다시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던 그 마음에는 아무 색깔이 없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고, 어렴풋 꿈이 하나 생겼었다.
우리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 던 '아줌마'가 있었다. 매를 맞고 발가벗겨져 대문 밖에 쫓겨 난 어느 날이었다. 조용히 대문 밖으로 따라 나온 아줌마는 자신의 카디건을 벗어 내 몸을 감싸주고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었다. 아줌마는 조용히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랫목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고, 내 입에 사탕 하나를 넣어 주었다. 달콤한 사탕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문간방 아줌마'가 보고 싶었다. 그때 처음, 그동안 내가 믿던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아줌마'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이 설렜다.
(다음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