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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05. 2023

울지도 못하는 너를-1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여섯 살 준이의 표정은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귀엽다며 다가온 어른의 친절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낯선 상황에 놀라는 기색도 수줍은 미소도 없었다. 내가 내민 작은 젤리 봉지를 보고 잠깐 눈빛이 반짝였던가? 준이는 자신 손을 꼭 쥐고 있는 여자를 한번 올려보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이의 표정은 그 어떤 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듯 단호했다.

"너, 낯가리는구나?"

귀여운 준이와 친해지려다 머쓱해진 어른들은 가던 길을 갔다.


준이를 만났던 날은 바람이 제법 쌀쌀한 가을이었다. 우리는 어떤 행사에 참여해 낮은 산을 오르는 길이었다. 준이는 줄곧 내 앞에 걷고 있었다. 산 중턱쯤 오르자 땀이 난 일행 대부분은 얇은 겉옷도 벗어 허리춤에 질끈 묶고 있었다. 하지만 준이만은 달랐다. 티셔츠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벗겨지기라도 할세라 끈을 턱까지 바짝 당겨 매고 있었다. 낮은 산이라 했지만 여섯 살 아이에게 충분히 힘든 길이었다. 준이는 떼를 쓰거나 힘들다며 걸음을 늦추는 법 없이 자기 손을 쥔 여자가 성큼성큼 내딛는 보폭을 쫓아 뛰다시피 걸을 뿐이었다.  


산 정상에 올랐을 즈음이었다. 준이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쓰고 있던 모자를 훌렁 벗어버렸다.

그것은 본능이라 할 만큼 당연한 상황이었다. 준이보다 큰 아이도 목이 마르다 다리가 아프다며 언제 정상에 도착하느냐 보채던 중이었으니까. 모자를 벗자 드러난 준이의 머리카락은 비를 맞은 듯 땀에 푹젖어 있었다.

게다가 단번에 눈길을 끈 것은 정수리쯤에 붙여진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얀 거즈 반창고였다.

"너, 개구쟁이구나?"

그 모습을 본 누군가 말했다. 그 소리에 앞만 보고 걷던 여자가 황급히 준이의 모자를 다시 덮어 씌우고,

아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준이를 잡아끌었다.


때마침 한차례 바람이 불었을까? 순간 흐르던 땀이 식을 만큼 서늘한 한기가 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정수리를 다치게 할 개구쟁이 짓이란 뭘까?’

몇 안 될 상황을 무심히 떠올리며 나는 계속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어떤 경우를 상상해도 오금이 저릿할 고통이 느껴졌다. 전에 몇 번 대화를 나눈 적 있던 여자는 평소와 달리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준이가 스스로 모자를 벗은 뒤로는 더욱 그랬다. 산행을 마치고 준비된 몇 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도록 준이는 단 한 번도 울고 보채지 않는 것은 물론 어떤 즐거움이나 괴로움도 드러내지 않은 처음 표정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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