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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06. 2023

울지도 못하던 너를-2



연일 복원될 수 없이 희생된 '어린 사람'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잊으려면 그것을 봐선 안 됐다. 보는 순간 무수히 많은 어린 내가 죽기를 반복했고, 여전히 늙지도 않은 엄마가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면 그런 일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살 생각이었다.

준이를 만난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사흘 뒤, 준이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소식이 들렸다. '그날 내가 본 것이 틀리지 않았구나!' 확신한 순간 내 우주는 심하게 요동쳤다. 20일 뒤 준이는 차가운 부검대에 뉘어졌다. 준이는 작은 몸 곳곳에 반복해 새겨진 것들을 증거로 내놓았다. 살아서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이야기였다.


'그날, 준이가 내딛던 발걸음은 죽음을 향하고 있었구나!'

이미 죽은 아이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앞서 걷던 준이가 예사롭지 않은 위치에 상처 입은 것도 봤지 않은가?

한눈에 나를 닮은 아이인 걸 알아보고도 벼랑 끝에 서있던 준이 손을 놓친 것만 같았다.


여섯 살 아이의 황망한 죽음은 아주 잠깐 세상을 술렁이게 했다. 한동안 이런저런 소문이 마음대로 떠돌았고,

어차피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소문일 뿐이었다. 변화는커녕 죽은 아이를 다시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준이가 무척 속 썩이던 아이였다더라.'

'어린이집에서 도둑질했다더라.'

어처구니없는 말이 여섯 살, ‘작은 사람’의 죽음을 폄훼했다.

'작은 사람'인 어린이는 그 죽음조차 작은 것이 되는 걸까?      


앞서 걷던 준이 뒷모습은 한 장 사진처럼 남았다. 준이 역시 지난날 나의 '문간방 아줌마'처럼 아랫목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고 바싹 마른입 안에 달콤한 사탕 한 알 넣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 헤맸을지 모른다. 그림책 속 이야기처럼 준이에게 살살이 꽃, 피살이 꽃, 숨 살이 꽃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준이의 앙상한 뼈 위에 뽀얀 살이 붙고 온몸에 발그레 피가 돌고 준이가 다시 쌕쌕 숨을 내쉬다 마침내 아이답게 으앙,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일. 그을린 잔해 위에서도 끈덕지게 자신을 복원한 사람으로 그래서 아직 새것인 사람으로 돌아와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지 않는다고 잊히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을 때 더욱 선명해질 일이었다. 무관한 사람으로 살기엔 애초에 틀린 일이고, 나는 더 이상 그 시절 어린아이도 아니었다. '피하지 말아요!' 준이는 떠나며, 내게 손전등 하나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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