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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07. 2023

잃을 게 없는 사람처럼!


개인적인 상처를 주제 삼아 소모할 목적이었다면, 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소곤댔고 어린아이가 죽은 일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 '다 이유가 있다.' 며 의미 심장하게 말할 때 아이가 맞아 죽어도 될 만한 이유가 무언지 그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사람들은 죽은 아이를 빨리 잊고 싶어 했다.

"안녕하세요? 저 준이 아빠입니다."


준이 사건이 있고 얼마 뒤 낯선 번호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죽은 아이의 아빠였다. 여자가 갖고 있던  연락처를 보고 내게 전화하는 거라고 했다.


"다름 아니라, 이번일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탄원서 좀 써주세요."

"아, 무슨 탄원..."

"그럴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꼭 부탁을 좀!"

그는 억울하게 죽은 어린 자식이 아닌 가해자 조사를 받고 있는 자신의 동거인에 대한 탄원을 부탁했다.


준이가 건넨 손전등을 꼭 받아 쥐기로 굳게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했지만 여전히 아동학대 사건이 가해자 개인의 일탈로 여겨지고 쉽게 잊히는 게 현실이었다. 과거로부터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였던 나로서는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슷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겪은 상처를 외면하거나 상처받은 어린아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만난 어린이 중에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존중받지 못한 채 조금씩 곪아 가기도 했다.


강자인 어른이 절대 약자인 어린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살해하는 사건이 ‘개인의 문제'로 끝났을 때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관심'은 상처받은 이를 구할 수 없고 냉소는 겨우 버티고 있던 아이를 끝내 벼랑으로 밀고 말 것이었다.  


나 역시 내 문제를 더 이상 '불운했던 개인의 문제'로 넘기지 않을 결심을 했다. 우리 곁에 어떤 이들이 약자로 살고 있는지, 어린 시절 상처받은 존재가 얼마큼 어두운 길을 걸어 나와야 하는지를 부단히 수면 위로 올려야 할 책임을 느꼈다. 경험한 자도 모른척한다면 누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까무잡잡한 작은 얼굴,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오목한 이마와 귀여운 작은 귀, 보드라울 것이 분명한 작은 볼과 여자 손에 이끌려 산을 오르느라 바쁘게 총총걸음을 옮기던 작은 신발까지 온통 작고 귀여운 그 모습이 떠오르면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것 없는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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