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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30. 2023

약자의 밥상

오늘, 그들은 무얼 먹었을까?

커다란 무였다. 손질한 무를 채 썰고 소금과 설탕을 뿌려뒀다. 잠시 숨이 죽기를 기다려 양념으로 버무리니 김치통 하나 가득 무생채가 담겼다. 뜬금없이 '멋지다!'는 단어를 떠올렸다. 주관적 표현의 오류가 아니라 그 단어 말고는 적확한 표현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삼천오백 원짜리 무 한 개가 푸짐하게 입맛 돋우는 먹거리가 된 일은 멋지고 훌륭한 일이 분명했다. 늘 기대 이상의 결과엔 감동이 따랐다.


하찮은 것이 끝내 하찮게 되지 않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새벽부터 집을 정리하고 음식 준비를 했다. 추석이라지만 차례 지낼 일은 없으니 연휴기간 아이들과 먹을 반찬이며 큰 딸에게 갖다 줄 몇 가지 요리를 한다고 부지런을 떨었다. 어수선할 것 없이 마음 조용한 연휴 첫날이었다.


라디오에선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는 설렘'에 대한 이야기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이런 날이면 매스컴은 늘 이런 식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러함이 마땅한’것처럼 일반화된 표현뒤엔 깊은 싱크홀이 숨겨져 있지만,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 들뜬 진행자의 목소리는 낭랑하기만 했다. 매스컴이 가진 파급 효과를 생각하면, 이제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전해줄 때가 된 것 아닌지 반문하고 싶었다. 비슷할 순 있지만 다른 처지에 놓인 다양한 삶을 보듬고 아우르는 표현이 당연히 흘러나올 날은 언제쯤 일까?

약자의 밥상을 떠올렸다.

밥알이 입안을 겉돌고 서러움을 국물 삼는 약자의 밥상을 떠올린다. 오고 갈 가족 없는 사람은 명절에 약자가 됐다. 급식지원 카드로 편의점 식사를 하던 아이도 오늘만큼은 컵라면이 아닌 따뜻한 밥을 배불리 먹었을까? 고시원에 살던 청년도 명절만큼은 핏줄 같이 얽힌 귀성길을 따라가 맘 편히 따뜻한 밥을 받을 수 있고, 쪽방 사는 어르신도 뱃속까지 뜨끈한 밥 한 끼 먹었을까.


여전히 사회적 목소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 아쉽다. 피 붙이를 향해 떠나는 행렬 뒤에 남겨진 소외를 가벼이 여겼다. 막힌 혈관이 부풀어 오른 듯 결핍의 도드라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정상'에 속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그러하지 못한 처지’ 때문에 쪼그라들고 초라한 마음이 되지 말자.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고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을 때 삶이 더욱 단단해지는 이유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경중이 다를 뿐 약자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는 몸이 아프고 불편해 약자가 됐고, 어느 사회는 '여자'라는 이유로 약자가 된다. 우리는 약자인 상태로 태어나 약자인 채 생계를 잇고, 노년을 다시 약자로 살다 죽는다. 약자가 끝내 약자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감춰진 싱크홀 깊이를 확실히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약자 스스로 상처를 드러내며 저보다 더 약한 이를 돌보는 세상이 됐을 때 우린 더 이상 약자가 아닐 수 있었다. 명절 연휴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인 날이 되고, 속이 든든해져서 어깨가 저절로 펴질 날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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