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에게 어떻게 먹일까?
중2 아이를 제때 먹이고 재우겠다며 자퇴를 실행에 옮긴 뒤에야 내겐 음식이 '미각' 보다 '청각'을 더 자극해 왔음을 알게 됐다. 음식을 두고 맛보다 소리라니!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은 뒤부터 먹거리 준비는 중요한 일과가 됐다. 주중에 한번 장을 볼 때는 고기와 야채, 과일의 비율을 맞춰 장을 봤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와 부족한 재료를 정리하며 앞으로 한 주의 식단을 가늠했다. 요즘 식재료 어느 하나 가격이 만만한 것이 없으니 장을 보면 바로 재료 손질을 해둔다. 두부는 기름 없이 살짝 구워두고 양배추는 데쳐서 물기를 빼뒀다.
기본 채소라 할 수 있는 호박, 당근, 양파 등은 쓰임에 맞게 손질해 물기를 제거해 각각 보관하고 손질한 대파나 고추, 버섯은 냉동해 뒀다. 고기는 양념에 재워두고 갈변하지 않는 과일은 껍질을 벗겨 하루 먹을 양만큼 통에 담아 냉장 보관해 두면 아이들도 언제고 먹을 만큼 접시에 담아다 부지런히 먹어치웠다. '또각, 또각' 식재료를 도마 위에 올리고 칼질하던 그 소리는 애쓰지 않아도 마음 가운데로 냉큼 들어앉곤 했다.
'또각, 또각, 또각'
어린 아이던 어느 날, 잠에서 깼을 때 집안은 조용했다. 엄마가 없고 집에 혼자 있다는 생각에 나는 뛰어나가 동네가 떠나가게 울며 집요하게 엄마를 찾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울고 매달리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많이 놀랐는지 묻기보단 자주 도망갈 거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는 날마다 떠날 거라 했기 때문에 어린 내 불안은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잠을 깼을 때 부엌에서 '또각또각' 무언가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작은 마음부터 온몸으로 퍼지던 '안도'가 나를 다시 잠 속으로 이끌곤 했다.
나에게 음식은 맛으로 먼저 오지 않았다. 재료를 씻고 다듬는 부산스럽고 바지런한 소리로 와서 보글보글 끓이던 것을 호록, 조심스레 맛보는 소리로 이어졌다. 마치 눈으로 보고 맛을 본 것처럼 선명한 기억이었다. 내게 음식은 도망가지 않은 엄마의 발자국 소리로 왔다. '엄마가 있구나! 나를 떠나지 않고 부엌을 오가며 음식을 만들고 있어!' 느끼는 순간 음식은 내게 다행한 일이 되고 버림받지 않은 오늘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도망가지 않는 엄마가 되는 꿈을 이뤘다. 언제나 내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며 아이들에게 '엄마의 음식'이 내 기억과는 다른 것이길 바랐다. 친절하고 다정한 것이길 바라고 불안하던 마음도 편히 되는 기도 같은 것이 되길 바랐다.
어릴 때의 음식 경험은 가장 약자로서의 '생존 본능'을 수반하며, 때론 존재의 삶을 통째로 흔들 기억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어릴 때 받아먹은 사탕 한 알의 달콤한 기억을 품고 평생을 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부족할 것 없이 넉넉한 용돈으로 혼자 끼니를 때운 결핍을 평생 잊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요리가 아니라 라면 한 그릇에도 담아 줄 다정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