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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16. 2023

이제, 학교 밖에서

살아보자!

아이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어른들이 그토록 중요하다던 학교였지 않나. 등교시간이나 복장상태와 같은 촘촘한 교칙이나 시험 문제 하나에 울고 웃었던 시간에 비하면 학교를 그만둔 과정이 너무 간단했던 것이다. 그것 역시 이제 아이가 느끼고 넘어서야 할 감정 중 하나였다.


여름방학이 끝나던 개학날, 학교밖 청소년으로 아이의 첫날이 시작됐다. 의무교육인 중학교에 '자퇴'라는 개념이 없으니 학교에 통보한 뒤 일정기간 결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학생 신분이 유지되긴 했다.


아이가 아침 9시에 일어나 여유 있게 아침밥에 과일까지 챙겨 먹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편했다. 중2면 다들 부족한 것 한 가지라도 더 배워야 하고 내신을 따져야 한다는 시기였지만 마음을 먹은 이상 조급할 것도 없었다. 충분히 자고 여유 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 확보는 공부보다 앞에 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아이 친구들에게 영상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이의 빈자리를 찍은 영상에 친구들의 아쉬움이 담긴 메시지였다. 혼자 씩, 웃는 아이 표정은 잠시 친구들이 있는 교실에 간 것 같았다. 친구 사이에서 '웃음버튼' 역할을 담당했던 아이였다. 자퇴 결정에 앞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질문도 친구 없는 생활이 괜찮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아이는 예상외로 담담하고 명쾌하게 대답했었다.

"보고 싶으면 만나면 돼쥬!"


우린 여름방학 시작 즈음부터 자퇴에 대해 나와 아이 모두 생각을 열어뒀었다.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방학생활을 통해 실현이 가능할지 각자 생각해 보기로 했던 거였다. 아이는 무엇보다 당사자로서 학교에 안 가는 것에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나 역시 아이가 왜 자퇴를 해도 좋은 건지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할지 고민했다.


사춘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뭐든 함께 하자고 마음을 바꾸니 친구가 생긴 것처럼 든든해졌다. 내 앞날 역시 만만찮을 모험의 첫날, 햇살이 밝힌 한낮 거실엔 선풍기 도는 소리만 들렸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 한 점이 장난치듯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는 낮잠을 즐기는 개와 고양이 옆에 누워 책을 읽다 스르르 단잠에 빠졌다. 한숨 잘 자고 난 아이가 갓 지은 밥으로 따끈한 한 끼를 먹으면, 단출한 반찬만으로도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이 충만할지 모르겠다는 꿈같은 소원을 비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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