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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Nov 04. 2023

엄마 마음, 그런 거 말고!

엄마와 딸이라는 연대

타인과의 관계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도 엄마와 딸 사이에선 아무렇지 않게 이뤄졌다. 세상에는 엄마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딸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었다. 멀리 떠날수록 관계는 건강해졌고, 독립은 엄마에게 더 필요한 일이었다.


며칠 뒤면 1년 5개월 만에 큰 딸이 캐나다로 돌아간다. 캐나다 변호사 연수과정 중이라 집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서 지낸 두 달여의 기간도 끝났다. 큰 딸은 오늘 다시 집으로 왔다가 모든 짐을 정리해 며칠 뒤엔 제주에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다소 번거로운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1화. 등가교환의 법칙 (brunch.co.kr)

18화 엄마, 나 취직됐어! (brunch.co.kr)


딸이 캐나다 시간에 맞춰 일했기 때문에 낮밤이 바뀐 탓도 있지만 주중엔 서로 연락할 정신없이 각자 바빴다. 얼마 전엔 짧은 톡으로 서로 근황 확인만 할 수 있었다.


"딸, 엄마는 요즘 브런치에서 청소 이야기 연재하고 있어!"

"아, 그래? 청소?... 나 요즘 재판 준비 바빠서 지금 내 방이야말로 청소가 시급한데, 곧 쓰레기 집이 될지도... 하하하"


엄마가 ‘얘들아, 청소부터 해보자!'라고 외치는 마당에 쓰레기 집 운운하는 딸의 메시지에 서로 'ㅋㅋㅋ'으로 가볍게 톡을 마쳤지만 나는 문제의 '엄마 마음'이란 것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할 일이 몰려 바쁠 때는 끼니 챙기기도 힘든 데 청소를 어찌했겠어!'


큰 딸이 집으로 오는 토요일은 내가 일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 전날 딸에게 가서 청소도 해주고 큰 짐은 미리 싣고 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토요일에 딸이 무거운 짐을 끌고 오며 고생하게 하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 때문이었다.

딸에게 아침에 가겠다는 연락을 해놓고 전날 밤엔 딸에게 가져다 줄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한 그릇 담아 놓았다. 이른 아침, 아들을 등교시키자마자 딸에게 달려갈 수 있던 것도 다름 아닌 '엄마 마음' 때문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고생을 자처하는 그 마음은 도대체 왜 그리도 신나고 부풀던 건지 다시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도착 즉시 챙겨간 청소도구로 시원하게 청소부터 할 작정이었다.

"딸, 엄마 도착했어!"

"벌써? 떠날 때 전화 하지."

새벽에 일을 마친 딸은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응응, 전화할 틈도 없이 달려왔지!"


말하며 들어 선 딸의 공간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짐은 들고나가기만 하면 되도록 정리가 끝나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딸이 모두 치우고 정리해 둔 것이었다.


아차! 그제야 나는 '엄마 마음'이란 이름으로 미화되어 세상의 딸들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선 넘는 엄마 마음'의 민낯을 보게 됐다.


서로가 타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열여섯 살에 대학 기숙사로 들어간 딸은 일찌감치 내 손을 떠나 공간을 분리했다. 간혹 딸을 챙길 기회가 생기면 딸이 성인임에도 여전히 챙겨 줄게 많은 어린아이처럼 여겨졌고, 성급히 '엄마마음'을 장전해 언제든 발사할 준비를 하게 됐었다.

그날 아침, 딸은 공간의 주인으로서 나를 맞이했다. 나는 딸의 공간에 들어 가 내 집인 양 청소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됐다. 부탁받은 게 아니라면 타인과의 관계에선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지 않은가.


엄마로부터 떠나고 싶던 딸들도 이제 엄마가 된다. '그 엄마 마음'과 '내 엄마 마음'은 결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결국 태생적으로 모든 딸은 엄마를 떠나야 할 운명을 가진 것일지 모른다.


엄마가 먼저 독립하기

사실, 엄마와 건강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없는 나는 결핍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엄마노릇을 하는 셈이다. 엄마로부터 떠나온 뒤에도 '엄마를 미워하며 살아도 되는가?'에 대한 전통적 편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으로 사랑의 감정을 전하기보다 노력으로 겨우 엄마 흉내를 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eminij15

(내 엄마와의 이야기는 이곳에 첨부해 둔다.)


'어린 딸도 저렇게 열심히 자기 몫의 삶을 찾아가잖아!'

이 생각은 나를 성장시킨 동력이었다. 딸을 힘들게 하지 않고 잘 독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이 듦으로 인한 육체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지만, 사유만큼은 연륜에 지혜를 더해 날렵하길 바란다.


감정선이 복잡한 엄마는 딸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나는 나이 들 수록 단순하고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각자 건강하게 독립하고, 엄마의 노동력도 소비되지 말아야 한다.

대게의 부모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고도 최고가 돼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갖었다.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거나 엄마로부터 분리되기를 소망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엄마의 노동력이나 시간, 삶 등을 당연한 듯 소비했다. 서로의 공간에 조심히 노크하듯 건강히 독립하고, 독립했다면 물리적인 것은 물론 정서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 때 성장 할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이 가진 연대감에는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자주 일었지만, 서로가 타인이란 사실을 잊을 때 서운함과 원망의 소용돌이는 더 거칠게 일기 마련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해 줄 거야?'기대하고 의지하기보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몫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날 아침, 딸이 미리 청소하고 짐을 싸둔 마음을 나는 감사히 받기로 했다. 시간을 절약한 덕분에 숙소 근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선물 받았고, 잔뜩 들떴던 그 기괴한 감정의 '엄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딸과는 '엄마와 딸'이라는 틀에서 걸어 나오면 좋겠다. 인간적인 소통이 가능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우린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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