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인 것이다.
큰 딸은 지난주 화요일 제주에서 서울로 떠났다. 주중엔 온라인으로 연수 과정에 참여해야 해서 캐나다로 바로 떠나지 못하고 며칠을 더 서울 호텔에서 지낸 뒤 지난 주말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고 연락이 왔다.
분명 집을 떠나던 날, 이민 가방이라 할 두 개의 캐리어와 배낭을 내 손으로 옮겨 제주 공항에서 배웅하지 않았나! 하지만 막상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는 말에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것도 내가 브런치북 ‘산문적인 인간'을 통해, 울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단 글을 올린 바로 그다음 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처음 귀국했을 때만 해도 집에서 3개월 정도만 머물 거라던 딸의 일정이 몇 차례 변경됐다. 비용을 포함한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결국 집에 머무는 게 딸에게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다만, 내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안방을 내주고 14개월을 내 공간 없이 지낸다는 것은 삶의 질을 떨어 뜨리는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다 '엄마의 모성'을 대입시키면 삶의 질 운운하는 내 생각은 일말에 동정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엄마라면서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마음속 불평만으로도 세상 형편없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 방을 고스란히 내주고도 불평 한마디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딸과 나는 둘 다 커피를 좋아했고, 아침을 맞이하는 데 있어 커피는 중요했다. 나는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넣어 연하게 마셨지만, 딸은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진하고 달게 마시길 좋아했다. 밤낮을 바꿔 지낸 만큼 딸에게 커피는 무척 중요했기에 커피만큼은 딸이 미리 사두는 편이었다.
그날 아침,
먼저 일어난 내가 커피를 마시려고 보니 커피가 딱 한 개만 남아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어딘가 뒤져보면 커피 한 두 봉지쯤 나오지 않겠어?'
다소 무책임한 발상을 합리화하며 결국 한 개 남은 커피를 마셔버렸다. 잠시 뒤 잔뜩 피곤한 채 방에서 나온 딸이 커피를 찾았고, 나는 홀랑 먹어 버렸음을 순순히 고백했다. 그런데 딸이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피곤했던 딸을 이해 못 한 건 아니었다.
억울했다.
'나는 방을 내주고도 엄마라는 이유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건만 그깟 커피 한 봉지에 이런다고?‘
갑자기 논점을 벗어난 유치하기 그지없고 못나 빠진 서운함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하지만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이럴 줄 알면서도 커피를 홀랑 먹어버린 것도 사실이니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신발을 꿰차고 나는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커피 두 상자를 사 왔다. 하나는 딸이 먹는 브랜드였고, 다른 하나는 좀 더 비싼 별다방 커피였다. 하지만 나는 별다방 커피는 감춰두고 며칠 동안 혼자만 몰래 먹었다.
'이게 엄마가 할 짓이냐? 네가 이러고도 엄마냐?'
마음속 엄마가 아우성칠 때도 나는 지지 않고 외쳤다.
'아, 몰라 얄미워서 그런다 왜!‘
얼마 뒤
딸도 숨겨져 있던 별다방 커피 존재를 알게 됐다.
"엄마, 이게 뭐야? 집에 이런 게 있었어?"
물었을 때 역시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얄미워서 그랬지...!"
"정말 그래서 커피를 숨겼었다고? 하하하하"
우린 두고두고 그 상황을 얘기하며 함께 깔깔대며 웃게 됐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척 살면서도 엄마니까 희생도 당연한 일이 되면 약이 올랐다. 딸마저 얄미워한 것도 모자라 좀 더 비싼 커피를 숨기고 혼자만 먹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놓고도
딸이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는 말에 주르륵 눈물부터 흘렸다. 있을 때 알아야 할 소중함을 꼭 떠난 뒤에야 깨닫고 후회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고, 혼자 조용히 있을 권리와 가끔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바로 그런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