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백 년도 더 된 깊은 우물 속이야! 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했고 우물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웠다. 한옥집 마당은 넓었고, 미로처럼 이어졌다. 나는 잔뜩 설레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함부로 그 고요함을 깰 용기는 없었다. 으레 위엄 있는 한옥의 고즈넉함은 절로 조아리게 하는 힘이 있었고, 난 너무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새 제주도에도 겨울이 바짝 찾아왔다. 교실에 온 아이들이 차례로 감기에 걸리더니 얼마 뒤 나도 코가 맹맹했다. 심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겠다 맘먹고 약을 먹은 채 낮잠에 든 날이었다.
꿈은 나를 무관하지 않은 어떤 장소로 데려다 놓았다. 그동안 이 기억은 어디 있던 건가. 꿈을 벗어난 뒤에도 잊고 있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히 재생됐다.
어린 시절 나는, 경기도 안성에 있던 외가에 보내지거나 친척 아줌마가 있는 마산에서 다시 아줌마 딸이 사는 구미로 보내졌고 꿈에 나왔던 그곳, 창덕궁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계동 한옥집’에 자주 보내졌었다. 그들이 나를 돌봐주고 싶을 만큼 사랑했었나? 생각하면 의아하게도 모두 나를 옮겨만 뒀을 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점이 동일했다.
계동 한옥집
너른 한옥의 위엄에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어른의 권위로 빈틈없이 채워진 그곳은 당시 예닐곱 살이던 내겐 여름에도 가끔 입술이 떨리도록 추운 곳이었다.
더구나 고즈넉한 한옥집 품위에 걸맞지 않게 화장실엔 구더기가 들끓었다. '구더기는 더러운 건데? 이곳이 그럴 리 없잖아! '나는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화장실이지 않은가? 나는 어느 날 조심히 나를 맡아있던 친척 할머니에게 구더기 존재에 대해 알렸다.
항상, 공단 한복을 입고 숱 없는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쪽을 진 할머니는 내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한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말했다.
"그건 구더기란다. 구더기는 원래 깨끗한 곳에 생기는 것이니 상관없는 거야!"
할머니 말이 어찌나 품위 있고 단호했던지 나는 그 말에 한 치 의심도 가질 수 없었다.
'하하, 깨끗한 곳에만 사는 귀여운 구더기야 안녕!'
그 뒤론 화장실에 들어갈 적마다 나는 더없이 깨끗하고 신성한 공간에 들어가는 마음이 되었었다.
‘때가 됐으니 밥 먹자!’
친척 할머니는 아이를 불러들여 밥을 먹일 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종일 계동 한옥 골목을 하릴없이 배회하는 신세였다. 매일 한옥 골목을 이 잡듯 돌아다니다 보니, 가끔 놀게 되는 내 또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나와 달리 곁을 밀착해 돌봐주던 할머니가 있었다.
아이는 볼 때마다 밥을 먹지 않으려 딴전을 부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그 애 할머니는 지치지 않고 국에 말은 밥그릇을 들고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끝까지 밥을 먹였다.
‘나라면 얌전히 앉아 주는 밥을 복스럽게 받아먹을 텐데,’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차라리 내가 크게 입을 벌려 그 밥을 받아먹어버리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저토록 밥을 먹이려는 데도 피해 다니며 꾀를 부리는 아이가 버릇없다고 생각하던 내 마음은 아이답지 않게 단호했었다.
프로레슬링 선수
그 당시 아버지는 프로레슬링에 심취해 있었다. 박치기를 잘하기로 유명하던 그 선수가 상대의 얼굴을 자신의 이마로 찍어버리면 상대 선수는 팔딱팔딱 뛰며 고통스러워했다. 때리는 쪽이나 맞는 쪽 모두가 기진맥진하면서도 그들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엉겨 붙어 싸웠고, 며칠에 한 번밖에 볼 수 없던 아버지는 그 모습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싸움을 보는 게 고통스러우면서도 마치 아버지만큼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척 그 옆을 지켰다. 하지만 레슬링에 몰두한 아버지가 곁에 있던 내 존재를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할머니의 계동 한옥집 옆에는 그 레슬링 선수 집이 이웃해 있었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친구아이와 나는 그 선수집 마당에서 오후를 보내며 놀곤 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레슬링 선수 집에서 놀던 기억은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레슬링 선수와 나 사이에 친밀함이 형성돼 있다고 믿기에 충분했다.
어느 날,
상대에게 박치기를 한 그 선수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장면이 티브이에 고스란히 실렸다. 흑백티브이였음에도 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박치기로 따를 사람이 없는 최고라 하지 않았나! 그런 선수의 이마에서 피가 흐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박치기 왕으로 불리던 그의 이마는 보통 사람의 것과 다른 것이어야 했다. 내가 한옥집의 구더기를 보면서도 인정할 수 없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어른들이 완곡히 전한 것의 허술한 실체가 드러날 때마다 나는 고통스럽게 그것을 지켜보거나 애써 못 본 척했다.
한옥집 담 너머
마당을 지나 미로처럼 이어진 뒷길을 따라가면 그리 높지 않은 담이 이어졌다. 담 아래 돌계단이 있던 곳을 딛고 올라선 어린 내 눈에 담긴 것은 바로 창덕궁 경내의 뜰이었다.
어린 나는 까치발로 담에 붙어 궁 안을 들여다보길 좋아했다. 초록이 가득한 그곳, 한옥집 안까지 들어오지 못한 햇살은 뜰 안을 빛나도록 비추고 있었다. 살랑 흔들리는 나뭇잎, 연초록의 잔디, 한옥집과 궁을 가른 낮은 담을 따라 올라가던 덩굴은 어쩌면 내 상상력의 시작점이었다.
어느 하나 의지대로 할 수 없던 아이의 삶에서 오롯이 내 의지로 멈춰 섰던 그 자리. 동경하며 보고 또 봤던 그 기억 저변에는 추웠던 한옥집 담을 넘어 따뜻한 햇살이 퍼진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었다.
그곳은 허술한 어른의 권위 따위 없는 곳이다. 당장 행복한 아이들 웃음소리로 얼마든지 침묵을 깨도 좋을 바로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