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존재가 되는 꿈
지난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오늘은 짧은 낮잠조차 얕아서 나는 꿈과 현실의 어디쯤을 헤맸다. 그사이 몇 개나 되는 문장이 떠올랐다.
현실의 간절함이 반영된 꿈이었겠지. 두 개? 세 개? 얼른 손바닥에라도 적어보려는데 만년필이 없었다. 적을 수 없다면 외워야지! 내가 숨까지 참으며 문장을 기억하려 애쓸 때 다시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아, 만년필은 어디 간 거지? 아끼는 건데. 결국 나는 한 문장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문장 기억을 하는데 답답하게 숨은 왜 참는 거야?'
'그만큼 집중을 해보려는 거지!'
'아, 물에 빠진 것 같아.'
'너 물을 두려워하면 수영은 끝인 거 몰라?'
'수영? 난 문장을 생각했다니까?'
나는 물에 있었다.
튜브를 잡으려고 손을 뻗자 튜브는 내 손끝에 닿아 더 멀리 밀려났다. 이제 문장은 잊은 지 오래됐다. 물 밖으로 나가려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참을 수 있는 숨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발끝에 힘을 모아 물 밖으로 나오려 버둥댔다.
예닐곱 살쯤 됐을 때였다.
경기도 가평 어디쯤이었다. 우리는 아버지 친구인 김 씨 아저씨 가족과 함께였다. 그 집에도 내 또래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른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펼쳐놓고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였다. 아이들은 얕은 강에서 튜브에 의지해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평화로운 여름 한낮이었다. 나도 튜브와 한 몸이 된 채 물살이 만드는 리듬을 천천히 느끼고 있었다.
몸에 힘을 뺀다는 건 자유로운 일이구나!
얼마쯤 물 위를 떠다녔을까? 어른들 모습이 멀어지고 웃음소리가 작아졌다고 느낀 순간, 뒤집힌 튜브를 놓치고 말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바닥을 딛고 물 위로 올라오려 할 때마다 강바닥은 내 엄지발가락 끝에서 아래로 힘없이 꺼졌다.
멀리서 내게 달려오는 사람은 김 씨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무서운 속도로 내게 달려왔고, 가라앉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나를 물밖으로 끌어올렸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한 손에 만년필을 쥐고 있었다.
문장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고, 물 밖으로 건져 올랐을 때처럼 저절로 큰 숨이 몰아 쉬어졌다. 나는 잠시 먹먹해서 그대로 누워있었다.
꿈에서 놓쳤던 문장은 뭐였을까? 꿈이긴 했지만 정말 무릎을 탁, 칠 만큼 맘에 드는 문장이었는데 말이야! 내 것이 되지 못한 것은 언제나 더 크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요즘 내 기억은 이런 식으로 놓친 문장과 지난 기억을 두고 자주 흥정하려 들었다. 의욕이 앞선 글쓰기는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과 닮았다. 글은 잘 쓰겠다는 생각보다 오류를 줄이는 게 맞았다.
놓친 문장은 그만 잊고 기억난 얘기나 잊어버리기 전에 쓰라고 스스로를 재촉했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지난 기억이 모두 돌아와도 괜찮겠어?'
내가 대답했다.
현재의 나를 이해하려면 과거의 기억이 돌아오는 게 맞지 않을까? 미래로 갈 땐 좀 더 선명한 존재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