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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Nov 24. 2023

도망간다는 건 아니야!

글쓰기라는 친구

사실, 틈만 나면 도망갈 생각을 한 게 한두 번도 아니었다. 결국 도망치고 시간을 탕진하고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 것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글쓰기를 편의상 '친구'라 해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쓴 '구름'이란 시가 칠판 앞에 커다랗게 적혔다. 그뿐 아니라 한줄한줄 선생님이 밑줄까지 치며 반 친구들에게 읽어준 날이었다. 내가 그걸 써냈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랐었다. 그날 저녁 나는 학교에서 있던 일을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네가? 라 했고,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아나, (옛다) 똥이라 그래라!" 했었다. 아버지는 내심 기쁨을 표현한 거였다. 내가 행간의 복잡한 의도를 잘 파악하게 된 배경에는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이 흘리는 아버지의 화법이 영향을 미쳤던 게 틀림없었다.


'아나, 똥이라 그래라!'

어젯밤 늦게까지 쓴 글이 도통 맘에 들지 않았다. A4 두장 분량 쓴 글을 결국 버리기로 결정하고 나는 아버지의 말을 유언처럼 떠올렸었다.


아침에 다시 쓰기 시작한 글이 한참 써질 즈음 막내가 일어났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나가 두부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찌개가 끓는 동안 다정한 내 친구는 주방까지 따라 나와서 한 개, 두 개의 문장을 건네주며 곁을 지켰다. 친구의 이런 다정한 의리를 생각하면 내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항상 부족했고 의리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집에 전날 사 둔 빵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삶의 의욕이 생길 만큼 행복해진다. 그런 나를 떠올리면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물론 잠에서 깨자마자 글 쓰고 싶은 의욕이 생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적이 없진 않지만, 빵을 생각할 때처럼 항상 그렇지 못한 것이 미안한 것이다.


초등학교 이후로도 친구는 종종 자신의 씨앗이 내 안에 있음을 여러 방식으로 알렸지만, '아나, 똥이라 그래라!'의 허들을 넘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있던 방향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자주 마음이 흔들렸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큰 규모의 백일장에 나가게 됐고 그만 1등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 부상은 세계 문학전집 50권이었는데, 25권씩 빨간 노끈으로 야무지게 묶은 책 두 덩이를 통 크게도 그 자리에서 직접주는 것이 아닌가?


전집 박스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몇 번이나 피를 토하는 사람처럼 주저앉았고, 한 덩어리쯤은 길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 나는 더 이상 그날 상을 받은 아이의 몰골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인지 벌인 지 알 수 없는 전집 50권을 무사히 가족들 앞에 내놓는 내 마음에는 득의만만한 것이 있었다.

'이래도 똥이야?'


그 일로 나는 친구의 존재를 확실히 깨달았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껏 해온 밥벌이의 대부분도 친구 덕인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확인했다.


나는 항상 크리스마스에만 교회에 가는 아이처럼 힘들 때만 친구를 찾았다. 일이 잘 돌아간다 싶을 때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세상만사에 호되게 휘둘리고 나면 얼얼하게 맞은 양쪽 뺨을 부여잡고 다시 친구를 찾았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글을 써보겠노라 묻지도 않은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끄적이는 척만 하던 날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든 조금 살만해지면 도망칠 궁리부터 하는 내 못된 버릇에 쐐기를 박기로 했다. 브런치 연재 기능이 생긴 뒤 처음 주 2회 연재로 시작한 것을 주 5회 연재로 바꿔 진행한 지 2주가 됐다. 매주 금요일부터 일, 월, 화, 수요일까지 이어진 5일간의 연재 압박은 순전히 내가 나를 잠가 둔 장치였다.


내가 쓸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안 써도 상관없는 시스템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약속한 이상 반드시 써야 하는 틀 안에 나를 넣기로 한 거였다.


일단 스스로 정한 연재 약속은 지켰으니 성공이긴 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 밤이 돼서야 그날 연재글을 발행하곤 다시 도망갈 생각으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글의 소재를 정하고 한 편의 글을 썼다 해도 어젯밤처럼 통째로 비우는 일은 수 없이 많았고 조금만 둘러봐도 이미 훌륭한 작가는 얼마든지 많았다.


그들의 글은 온통 확신으로 가득했고 어느 대목에도 웅얼거리거나 망설이는 구석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처럼 처량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해도 너무나 당연하게 '이쪽으로 오라니까?' 하면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의심부터 하는 사람이었다.


연재 없는 목요일은 글을 한 줄도 안 쓰고, 세상 훌륭한 책도 글도 안 읽을 거야!


" 사춘기야, 오늘 현장체험 하는 거 어때? 영화 보러 가자!"

학교밖 청소년인 막내는 오전 공부를 오후로 미루고 나를 따라나섰다. 우린 설명만으로는 이해 못 할 현대사가 저절로 이해될 만한 최근 개봉작을 보기로 했다.


일단 집을 나가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무엇보다도 쓰려던 것을 책상 위에 그대로 버리고 나온 일이 통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너무 피가 끓어오르는 영화를 본 탓에 지나치게 각성된 마음은 그 밤 썼던 글을 통째로 버리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오늘도 다시 연재할 글을 쓰며 친구를 만났다. 누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약속을 지키고 싶다. 글쓰기라는 친구를 두고 우린 가끔 돈이 되는 일이냐 아니냐를 저울질 하지만 그 친구가 사납게 일렁이던 내 마음을 다독인 일을 떠올리면 그런 셈을 할 염치가 없어진다.


타인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자고 생각하는 순간 글은 쓰기 어려워졌다. 너무 멀리 도망가지 않으면서 부단히 쓰는 마음이라야 글쓰기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위해 써라. 남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도리스 레싱 할머니의 말을 마음에 다시 세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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