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Jan 21. 2024

멀고 또 가까운, 연대

<작가의 작품을 오마주하며 내이야기 쓰기>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문장이 마침표도 없이 멈췄다. 물에 빠진 아이는 아직 물속을 버둥거렸고, 아이를 구할 아저씨는 아직 아이에게 당도하지 못했다.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바지런히 오가던 길은 무심히 끊겼다. 내 곁에 앉은 딸아이는 열대지역에 대해 말해줬다. 나는 물에 빠진 이야기 때문인지 1년 내내 여름뿐 인 열대지역 얘기 때문인지 큰 숨을 한번 내쉬었다.


더운 나라를 벗어나자 딸아이는 이번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노랫말 하나를 알려줬다. 아이돌에 비할 건 아니지만 나를 구하러 달려오던 아저씨도 청년처럼 날렵한 모습이었다.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 걸 눈치챈 걸까? 곧이어 딸이 아쉬운 듯 내게 손을 흔들곤 천천히 방을 빠져나갔다. 딸이 나간 뒤에도  끊어진 길은 바로 이어지지 못했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는 겨우 물 밖으로 꺼내질 수 있었다.


아버지와 친구였으니 아저씨도 지금쯤은 돌아가셨을지, 아니면 아흔을 훌쩍 넘기고도 상상 못 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살고 계실지 궁금해졌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물에 빠지던 날도 옆에 있던 내 아버지가 자리에서 채 일어서지도 못한 사이에 아저씨는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올 만큼 건강했으니까.


죽을 뻔한 아이를 구한 일을 두고 아저씨는 몇 번쯤은 사람들에게 자랑도 해봤을까? 아니면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며 겸손해하느라 그날 이후 아예 잊고 살았을까?


만약, 아저씨가 여러 번 무용담을 말했다면, 그때마다 나는 죽을 뻔한 아이가 돼 다시 물에 빠졌겠지? 다시 물에 빠지는 건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래서 나는, 언제나 살아난 아이였겠구나! 나는 아저씨의 무용담 속에서 수없이 물에 빠졌다가도 결국은 살아나는 아이를 떠올렸다.


방학중이라 종일 온 식구가 집에 있게 되자, 개와 고양이도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 건지 서로 안 하던 짓을 하며 자주 소란을 피웠다. 두 명의 진행형 사춘기가 있긴 했지만, 그만하면 다 컸으니 크게 손 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학 이후 앞 시간은 뒷 시간으로 흐르듯 이어지지 못하고 마치 불에 덴 듯 겅중겅중 뛰었다.


그러는 동안 이제와 뭘 쓰려는 거냐고 자문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특히, 사춘기 둘이 번갈아 내 주위를 맴돌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조차 애써 모른 척했을 때는 뜬금없이 ‘죄책감’ 같은 단어를 떠올렸었다.


며칠 전 운동을 다녀온 아들이 택배가 왔네요! 하며 가져다준 것을 풀어보니 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박완서 작가 작품집이었는데 제목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였다.


책임 수반을 기본으로 할 사랑에 무슨 수로 무게를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 반문하며 나는 무심히 책장을 휘릭 넘겼고, 우연히 펼쳐진 대목에 다음과 같은 글귀와 사진이 있었다.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고 경험이 누적돼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한다'

정곡을 찔린 것처럼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책의 절반 가량을 단숨에 읽었다. 그 말은 절망 같기도 하고 격려 같기도 해서 마음이 일렁였다.

나는 자식과의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걸어온 길>-중에서 (1991)

그녀는 1988년에 폐암으로 남편상을 치르고 몇 달 지나지 않은 같은 해에 하나뿐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참척을 겪었다. 수필 <내가 걸어온 길>에서 그녀는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이라 담담히 적은 뒤 ‘남겨진 자유가 소중해 그 안에 자식도 들이고 싶지 않다' 적은 대목에 이르러 숙연해졌고, 나는 흔들리던 마음에 용기를 얻었다. 척박한 삶을 견뎌낸 끝에 그녀가 마침내 도달한 곳이 다름 아닌 자신의 내면이기 때문이었다.


큰소리를 안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1973)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소중한 자녀였지만, 점점 그 거리는 좀처럼 맞출 수 없는 저울의 영점처럼 극단적으로 좁혀지거나 혹은 멀어졌었다. 하지만 과거에 살던 글이 50년의 시간을 통과해 현재로 자박자박 걸어오더니,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원칙이 바뀔 건 없다!’ 말했다. 글은 다시 미래의 아이를 키울 불쏘시개로 태워지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 마치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만 같다.


 나는 아저씨가 어린아이를 구한 무용담을 수없이 말했길 바란다. 그걸 들은 이로부터 대단하다는 찬사도 여러 번 들었다면 더 좋겠다. 내가 전하지 못한 인사를 다른 사람에게라도 들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아저씨는 상상이나 해봤을까. 그날 당신이 살린 아이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품은 존재로 성장해 세 아이의 엄마일 뿐 아니라, 세명 아이의 삶마저 그날 당신이 나를 건져 올린 순간과 무관하지 않게 연결됐단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말해온 작가였다. 우린 과거의 글쓴이로부터 바통을 이어받는다. 각자 내야 할 목소리를 부단히 가다듬고, 다음 이어질 이야기를 거뜬히 써냄으로 서로 연대한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그것은, 멀고도 가까운 거리뿐이었다.

작가를 오마주 하며!
 '산문적인 인간 2' 브런치북 소개에 적은 것처럼 이번에는 테마가 있는 글쓰기로 연재가 됩니다.
1화 '멀고 또 가까운 연대'는 작가를 오마주 하는 글쓰기였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