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허구인 것처럼 쓰기
엄마, 그날 우린 달걀을 그리 멀리 던질 필요가 없었어요. 어차피 세게 움켜쥐기만 해도 깨지는 게 달걀이잖아요. 그 약한 걸 그렇게나 힘껏, 멀리 던진 일이 떠오르면 난 허탈해져서 웃게 돼요.
광주의 한 대학 옥상에서 보호 종료 청년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추락사했다. 청년의 책상에서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2022년 8월 25일 기사>
이 사건은 당시 보호 종료 청년들의 어려운 생활 형편에 초점을 맞춰 보도됐지만, 최근 다시 들려온 어린 청년의 죽음엔 석연치 않은 비밀이 숨어있었다. 그건 함부로 위계를 정한 비열한 것, 안 그래도 깨지기 직전인 약한 것을 아주 멀리 던져 깨트리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아 여러 보육시설을 전전하던 청년은 대학에 입학하자 시설로부터 자립해 기숙사에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보육원 측의 일방적인 자립 통제와 청년 앞으로 나온 자립 준비금에 대한 보육원의 개입과 통제로 갈등이 생겼고, 청년은 갈등이 심화된 이틀 뒤 자살했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18세 전,
시설로부터 자립하기 위해선 자신을 버린 부모를 찾아야 한다. 친권의 권한이 큰 한국은 아이를 버린 부모라 해도 최종 판단의 주체를 부모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다시 거부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새 가정을 꾸렸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신나는 날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친근하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오빠가 아닌, 나만 데리고 밤마실을 간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굉장히 재밌는 일을 앞둔 사람처럼 들떠 있기도 했지만, 놀이는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그녀는 달걀에 알 수 없는 그림과 글자를 그려 넣더니 깨지지 않게 조심하며 나를 데리고 주택가를 벗어나 번화한 대로변으로 나갔다.
그전에 내가 불빛이 일렁이는 밤거리를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마치 꿈을 꾸듯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녀는 후미진 가로수 아래 몸을 숨기더니 내 팔을 당겨 나를 옆에 앉혔다. 네온사인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서 어룽거렸고, 나는 그녀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내게 주의를 줬다. 잠시 앞뒤 좌우를 한번 살핀 그녀가 사 차선 도로를 향해 달걀 하나를 힘껏 던졌다. 달걀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이번엔 내 손에 달걀을 쥐여줬다. 작은 손에 비해 달걀이 컸나 달걀에 비해 내 손이 작았나!
“던져! 멀리 던져야 해. 저기 지금 큰 차 지나는 곳 있지? 거기까지!”
나는 그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달걀을 힘껏 던졌다. 하지만 내 달걀은 멀리 가지 못하고 터무니없이 가까운 곳에 떨어졌다. 그녀는 잠시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보란 듯이 어둠을 향해 나머지 달걀을 힘껏 던졌다. 어디선가 자동차 경적 소리가 크게 한 번 울렸던가? 하지만 번화가에서 달걀 몇 개 깨진 일은 별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내 손을 잡고 집을 향해 걸었다. 나는 달걀을 멀리 던지지 못한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려 그녀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나는 그녀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지만, 곧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에게 사랑받는 일이 왜 이렇게 두려운 일을 통과해야만 하는 걸까. 앞으로 몇 번의 무서움을 더 참고 견뎌야 나는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 막막해서 두려운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다.
문제라면 그녀와 내가 생각한 사랑 사이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사실, 인간관계가 그렇지 않은가? 내 맘처럼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맘인 것처럼.
‘먹여주고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르는 것, 나도 널 보육원 앞에 버리고 갈 수도 있었는데!’
그녀 말처럼 그녀는 나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억울했겠다. 하지만 그녀가 원죄가 있는 내 손에 자신의 불순한 소망을 적은 달걀을 쥐여주고 던지게 한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을 때, 그녀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애초에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청년 역시 보육원 원장과 함께 부모를 찾아갔다 눈앞에서 부모로부터 거부당했다. 보육원 원장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더 이상 갈 곳 없는 아이 현실을 전시했고, 이것은 청년이 자신에게 굴종하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같은 보육원에 살다 청년보다 앞서 목숨을 끊은 또 다른 청년 역시 21살에 퇴소해 자립했지만, 친구에게 배가 고프다며 빵 사 먹을 돈 500원만 빌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엄마라 불리던 보육원 원장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몇 번이고 다시 버림받도록 했다. 아이들의 목숨값을 쥐고 흔들었다. 낳은 부모도 버린 아이들이니 얼마나 쉬웠을까. 아이들이 안 그래도 깨지기 직전인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들은 있는 힘껏, 아주 멀리 던져 깨트릴 작정을 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다.'
염치없지만, 유서로 적은 청년을 대신해 더 읽고 쓸 생각이다. 글이 목소리가 되고, 빵이 되고, 다시 책이 됐다 이불이 돼서, 부모가 있지만 없는 아이를 다정히 씻기고 따뜻이 재울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