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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01. 2024

운다는 것은 뭡니까

내 삶의 전환점이 됐던 날에 대해 쓰기!

왜 저는 덜 슬픕니까. 덜 슬프고 적당히 기쁜 것이 좋은 겁니까? 제가 대단히 슬프고 끝장나게 기쁜 것을 잘 모르는 게 좋은 것이냔 말입니다.
<안온-일인칭의 가난> 중에서        

그날은 그의 장례식이었다. 내 시작이라 할 존재이며 여자들의 땅을 전쟁터로 만들고도 남자기 때문에 쉽게 용서받은 그의 마지막 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끝내 누구에게 무엇을 미안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떠났다. 엄연히 나는 그의 막내딸이지만 혼외자로 분류된 만큼 상주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문상객도 상주도 아닌 어정쩡한 자격이었고, 그의 영정사진이 정면으로 뵈는 복도 의자에 하나의 커다란 점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순간조차 아버지의 죽음을 대단히 슬퍼할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의 77년 역사에 내 존재가 오점으로 남는가? 나는 결국 태어나선 안 될 존재로 방점을 찍는 건가? 따위를 생각하거나 저 영정사진은 언제 찍은 걸까?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사진 기사가 아버님, 치즈~를 외친 걸까? 입모양이 그렇잖아. 따위 산만한 생각이 오갈 뿐, 슬프다는 감정을 느낄 수 없어 괴로웠다. 차라리 눈물 나지 않는 이유가 그의 웃는 입 안쪽에서 빛나는 금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9개월 전, 친척 아주머니로부터 그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그와 헤어진 지 20년 만이었다. 나는 기억하던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 병원 복도를 몇 번이나 서성거렸다. 결국 그냥 돌아 나올 참이었는데,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모두 빠졌고 병색이 완연한 늙은 얼굴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을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뒤 나를 알아본 그는 나를 안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온전히 슬픔에 빠지지 못했다. '운다는 것은 뭘까?' 통곡과 오열은 대부분 자신의 서러움을 토해내는 방법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의심했었다. 20년을 같은 서울에 살며 연락 한 번 않던 그가 아니었나.


문상객과 그의 가족들이 오가는 상가는 분주했다. 나는 상주도 될 수 없었지만, 문상객처럼 앉아 밥상을 받고 있을 수는 더욱 없었다. 나는 그의 영정 앞에서 내 탄생과 성장의 퍼즐을 맞추며 그대로 앉아 밤을 새웠다. 그의 역사가 과오투성이로 끝났더라도 나는 확실히 현실을 알아야 했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내 존재가 오점일 수 있으나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게 태어남이니까.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이런 선택을 할 리 없었다. 없는 존재로 살길 강요받았지만, 나는 분명히 존재했고 그게 진실이었다.  


새벽녘 문상객들이 돌아갔을 즈음 그의 여섯 자식 중 제일 큰 언니에게 갔다. 상주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주길 정중히 부탁했고 상복을 입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애매한 입장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의 자식들은 회의를 통해 내 이름을 상주 명단에 올려주고 상복도 내줬다. 그를 편히 보내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잘못이 없기는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니까. 그는 끝까지 자식들의 배려를 받으며 떠났다.

죽은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사노요코)

난 그의 죽음을 빌미로 내 설움을 토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폭풍이 일던 마음은 그의 장례식 뒤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얻은 평화라니! 그도 죽은 뒤에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를 병원에서 만난 뒤 우리 사이엔 9개월 남짓의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그가 요양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더 병문안을 갔었다. 이제 그와 그의 아내는 같은 요양병원의 아래, 위층에 나란히 입원해 있었다. 그는 내가 가면 무척 반겼지만, 나는 그를 간호하는 이복 언니를 배려하느라 자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에는 좋은 음식이며 떡을 맞춰 큰 어머니가 있는 병원을 찾곤 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 싸우던 여자들만 남았다. 하지만 이미 여자는 늙고 병들었다.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침대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쇠약할 뿐 아니라 그의 딸들도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아내를 큰어머니라 불렀는데, 그녀는 준비해 간 음식이며 떡을 내가 병실마다 돌리고, 곁에 앉아 머리를 빗겨주거나 손을 쓰다듬어 주면 내 손을 움켜쥐며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고, 그조차 한낱 부질없는 소모전이었을 뿐이었다. 내 눈에는 그녀 역시 그의 아내로 살던 불쌍한 한 여자일 뿐이었다. 따뜻한 피가 돌고 눈물을 흘리던 그의 아내도 그를 따라 얼마뒤 떠났고, 그것도 벌써 한참 지난 일이 되었다. 그들은 차례로 떠나며 모두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대단히 슬프고 끝장나게 기쁜 것을 잘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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