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Feb 03. 2024

그릇이 거기 있는 이유

<기억이 있는 그것에 대해 글쓰기>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리베카 솔릿-멀고도 가까운>


어디서 막혀버린 건지 몇 개의 주제로 쓴 글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몹시 까탈스러운 고객처럼 이것도 치워요, 저것도 당장 치워버려요! 외치고 있었다. 꽉 막혀버린 변기를 버리고 떠날게 아니라면, 결국 숨을 참으며 뚫어야 하는 것처럼 막혀버린 글쓰기도 숨을 참듯 집중하여 마침내 써내야 했다. 답답하다고 당장 멀리 떠날 수 없으니 나는 잠시 책상을 떠나 별일 없는 듯 좁은 집안을 배회했다.


글 쓴다며 미룬 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자리를 벗어난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다 우연히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전에 브런치에 썼던 '무사히 할머니가 된다면'에서 밝힌 바 있듯, 노후를 위해서 책만큼은 미니멀라이프 목록에 넣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책도 아니면서 베란다 한쪽 선반을 가득 채운 그릇은 왜 그대로 있지? 나는 마치 그것이 내 그릇이 아닌 것처럼 반문했다.


내 집에도 미니멀라이프의 바람이 몇 차례 불었다. 나는 자리만 차지하고 사용하지 않던 가재도구며 옷가지를 미련 없이 집 밖으로 내보냈고, 그때마다 아쉽기는커녕 비우는 기쁨을 논하며 야멸차게 대문을 닫고 들어오지 않았나? 그럼에도 책과 달리 명분도 없는 그릇은 어째서 버릴 목록에서 제외된 거지? 더구나 그릇은 대부분 파티용 접시나 샐러드 볼 종류로 일반 뷔페에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크기였다.


그때, 나는 자주 이 그릇을 모두 꺼내 닦고 1800센티 접이식 테이블 두 개를 펼쳐 T 자로 배치했었다. 곁에는 1200센티 보조 테이블까지 두고 미니 뷔페 상차림 준비를 즐겼다.


대형 파티용 그릇마다 음식이 가득 담기려면 하루 전날부터 장을 보고 재료 손질을 해야 한다. 최소 여섯 가지에서 여덟 가지, 많게는 열 가지가 넘는 메뉴의 레시피를 기억하고, 손질한 재료를 나눠뒀다 차례로 양념해 조리고 볶는 과정을 거쳤다. 손님이 도착하기 전에 준비가 끝나도록 촘촘히 시간 계산을 해두지만, 음식이 가장 맛있는 순간을 놓칠까 봐 늘 노심초사했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연신 감탄하며 파티를 즐겼다.

그럼, 나도 같이 즐겼나? 돌아보니 그렇지 못했다. 나는 잠시도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식은 음식을 다시 데우고, 비워진 음식 접시를 채웠다. 디저트를 내오고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엔 손님이 잘 먹던 음식을 눈여겨봤다 따로 포장해 들려 보냈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자리엔 설거지할 그릇이 어지럽게 남아있었다. 주로 도자기로 된 무거운 파티용 그릇의 설거지를 모두 끝마치면 손목이 시큰거리고 물리적인 피로가 밀려왔지만,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피로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니! 이유는 있었다. 손님들이 내 음식을 먹는 내내 들려준 칭찬, 찬사, 감탄 때문이었는데 그것엔 중독성이 있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중독된 상태였다. 내가 원하는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라도 장을 보고 요리할 수 있었고, 무거운 파티용 그릇을 꺼내 닦고 설거지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그때의 내가 몹시 가여워졌다. 나는 그들을 살피며 듣고 싶은 말을 기대하느라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순간에도 몰입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염려하며 마음을 졸여온 걸까?


현재의 나는 과거에서 온 게 틀림없었다. 현재 내가 갖은 물건에는 그것이 내게 올 때의 마음이 담겼고 (이걸 언제 샀지? 같은 감정이라도) 과거의 나를 기억할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오늘 나처럼 그 물건을 들여다보다 내 안에 감춰진 욕망과 맞닥뜨리고, 변기를 뚫듯 막혀버린 글을 마침내 쓰게 될 수도 있었다.


이쯤에서 나는 여태 그릇을 버리지 못하고 모셔둔 이유는 뭐였지? 언제 또 내 요리를 삼킨 이들이 감탄하는 걸 기다릴 생각이었던 거야? 스스로를 추궁하려다 그만뒀다. 가끔 앞뒤가 다르고 한없이 허술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젠,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은 알기 때문이었다.

 




이전 02화 그게 나라고 말할 용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