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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Feb 25. 2024

 위험하고 솔직한 것!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쓰기)

나는 노래하고 싶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언어를, 나를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언어를, 이 우주적인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내게 증언을 요청하고 나 역시 증언을 요청할 수 있는 언어를 원한다. 여기 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씨름하는 것, 위험한 것, 솔직한 것.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살도록 강요된 사회제도와 여성으로서 말하기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모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던 그녀와 나사이의 두려움과 침묵에 대해 작은 영감을 얻게 됐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첫 글로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성급히 써냈었다. 그 과정이 아마도 프라이팬에 기름칠을 한 셈이었지만, 나는 얼마 못 가 달걀이 잔뜩 들러붙은 프라이팬을 마주했을 때처럼 통째로 글을 버리고 싶어 졌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버리고 싶던 것이 개인적인 삶에 대한 고백 때문인지 아니면 부족한 글쓰기 때문인지 말해보라고.


나는 내 글이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여전히 피해자인 나를 보기 힘들었다. 누군가를 고발할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지만, 폭력의 주체였던 그녀에 대해선 여전히 날이 서있었다. 사실, 그 당시엔 학대 생존자로서 겪은 사건에만 몰입한 나머지 내가 뭘 위해 말하려는지 조차 정하지 못하고 오직 써 내려갔었다.


“하필, 왜 네가 태어났니?”

그녀는 내게 수없이 물었다. 왜 하필 너였냐고. 태어난 이유를 낳은 자에게 질문받던 기억을 복기한 과정은 힘들었다. 나는 새삼 참을 수 없이 슬퍼하고 분노했기 때문에 여전히 피해자로 남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무 결정권 없는 존재에게 탄생의 책임을 묻고 있었다.


무지함에서 비롯된 질문의 부당함에 대해 나 역시 의심한 적 없었다. 그것은 반복해 학습된 결과였고, 아무리 사랑해 달라고 떼를 써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오랫동안 길든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머니면서 동시에 내게 자기혐오를 가르친 당사자인 탓에, 나는 산다는 건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 생각 들 때마다 차라리 시대를 원망하거나 나보다 더 힘들게 산 사람도 있다거나 아니면 예민한 탓이라며 내게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녀가 나를 낳은 뒤, 열흘 만에 그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남자인 그의 입장에선 열흘 사이에 두 여자에게서 아들과 딸을 얻은 상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뿐 아니라 일이 단단히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그녀가 얼크러진 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을 터였다. 이 사태를 만든 가해자의 실체는 명확했고 원망을 한다면 당연히 그에게 하는 게 맞았지만, 엉뚱하게도 그녀가 지목한 곳에는 내가 있었다. 놀랍게도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른 뒤에도 그는 남자라는 이유로 쉽게 용서받았다.


그 아이나 나는 그저 태어났을 뿐이지만, 그 일은 여러 상황을 바꿨다. 한 집은 딸 다섯을 낳은 끝에 간절히 바라던 아들이 태어났지만,  또 다른 집에서 태어난 나는 여러 상황에 밀려 여덟 살까지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양쪽을 오가던 그의 행적이 낱낱이 밝혀졌고, 그 뒤 수년동안 여자들의 삶은 전쟁터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 집엔 그의 아내가 얼마에 한 번씩 동네 여자들과 들이닥쳤다. 그때도 정작 심판대에 올라야 할 남자인 그는 가만 놔둔 채 여자들만 투사처럼 싸웠다. 사건 당사자인 여자로도 모자라 그 사태와는 아무 상관없는 동네 여자들까지 동원됐다. 남의 남편을 꿰어낸 여자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지나가던 여자도 달려와 머리끄덩이를 잡을 판이었다. 내 남자건 남의 남자 일이건 상관없이 여자들은 마치 그날만 기다려 온 사람처럼 몹시 호전적이었다.


남자를 믿고 결혼식까지 했던 그녀도 억울한 게 많았지만, 도끼니, 망치 같은 연장을 들고 달려온 서슬 퍼런 여자들을 당할 방법은 없었다. 따라온 동네 여자들은 각자 터트리고 싶던 울분을 모두 꺼내 놓듯 제 일처럼 팔을 걷어붙였다. 어떤 여자는 울고 있는 어린 나를 결박하듯 붙잡고 있었고, 다른 여자들은 흩어져 닥치는 대로 세간살이를 부수거나 힘을 합쳐 무거운 솜이불을 마당으로 끌어내려 물에 담그고야 돌아갔다.


모든 사태가 거기서 끝났다면,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녀 삶에 어떤 연민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 삶이 궁지에 몰릴수록 그녀는 내게  더 자주 물었다. 왜 하필 네가 태어났냐고. 그런 탓에 나는 그녀에게 내가 목격한 일들에 대해 질문할 수 없는 건 물론, 여자로 살도록 강요받았던 그녀 삶을 위로할 기회도 없었다. 그저 침묵함으로 사랑받길 원했지만 솔직할 수 없다는 죄책감이 항상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녀는 오래전에 이미 전쟁이 끝났음에도 내가 여자아이가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자신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우린 함께 전쟁터를 뒹굴던 시간에 대해 진실하게 공유하거나 위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같은 여자로 조차 어떤 연대도 할 수 없었다.


흔히 운명이나 숙명, 같은 말로 존재의 삶을 정의하기도 하지만, 난 운명이란 책임 없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고 싶지 않다. 어떤 일도 일어나는 게 삶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통해 삶이 내게 준 통찰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씨름하는 것, 위험한 것, 솔직한 것. 마침내, 생존자의 서사가 개인에 머물지 않고 구조자의 의무로 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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