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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pr 07. 2024

아주 가느다란 신경 줄에 대한

글이 써지지 않는 얘기를 글로 쓰기

존재를 지탱하게 하고 삶을 유지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준 실체는 아주 가느다란 신경 줄이었다. 놀랍도록 견고한 동시에 터무니없이 유약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며칠 전, 브런치로부터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이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처음으로 받았다. 몇 주 동안 발행을 못 하자 생긴 일이었다. 산문적 인간답게, 매일 좌충우돌하면서도 한동안 이곳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진행형 사춘기 두 명 중 한 명은 고3이 됐고, 다른 한 명은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었다. 난 시간의 꽁무니에 붙어 거의 끌려가는 중이었다. 개학과 동시에 시간은 앞서 달렸다. 머릿속은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충동을 견디는 중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것을 메모한 노트에는 '아주 가느다란 신경 줄'에 대한 자료가 모였지만, 나는 써둔 글부터 퇴고할 작정이었다. 의지를 통제받은 내 신경 줄은 몹시 경직되더니 나날이 자신감이 사그라드는 방식으로 반응했다.


고3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진학 상담 전화를 받았을 즈음, 나를 지탱하던 신경 줄은 위축되고 잔뜩 주눅 든 상태였다. 게다가 진학 상담을 할 만큼 준비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아서, 나는 상담 내내 '고3 엄마다운 자세'에 대해 떠올려야 했다.    

과연 엄마 마음으로 줏대 있게 사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평소, 나는 대학이 반드시 인생의 관문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자신이 가장 행복할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아들은 공부보다는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스스로 즐거운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담임 선생님 전화에 자꾸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가 말이다.

별안간 나는 고3 어머니 인척, 선생님 조언을 꼼꼼히 받아 적고 수시 일정을 확인했다. 아들 내신 등급이 예상보다 높아서 한 번 놀랐고, 지원서 쓸 곳이 많으니 모두 원서를 내자는 대목에선 마음이 복잡했다. '대학 입학이 목적인 원서 쓰기가 아니라, 아들이 원하는 전공에만 소신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합격 후에 모든 책임은 아이에게 있을 텐데….'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미적거리다 달력에 적힌 메모 하나를 발견했고, 놀란 나머지 아이와 더 의논하겠다는 말로 선생님과의 진학 상담을 마무리했다.    


작은 사춘기의 검정고시 일정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지난여름, 학교 밖 청소년이 된 뒤 이날만 기다리며 시험 준비를 했지만, 시험 준비 절차에 대해선 거의 잊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내 신경 줄은 어느 일부만 작동되는 게 분명했다.


급하게 교육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수험 번호와 고사장 확인, 수험표를 출력하라는 공지가 올라온 지도 이미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작은 사춘기는 신분증도 없었다! 급하게 증명사진을 준비해 임시 청소년증 발급을 받은 뒤에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내 신경 줄의 작동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신경 줄에 의지한 내 상황은 언제나 불안 할 수밖에 없었다.

    

그쯤에서 그만 내 시간으로 돌아와 불안을 잠재울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조상의 조상과 그 조상부터 이어 온 유전적 요소에 대한 이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불안과 우울을 객관적으로 보게 할 힘을 줄 것이었다. 그 뒤엔 강렬히 영향받은 나머지 새롭게 복제된 신경 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을 쓸 수 있길 소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앞 세대보다 진화된 신경 줄이다. 그러려면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하거나, 어머니 노릇에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야 했다. 방법을 찾으려 고민하고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행위만이 유일했다. 부단한 고민 끝에 진화된 건강한 신경 줄을 뒷세대에 물려주고, 그들은 좀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것에 대해 고민하며, 더욱 건강한 신경 줄로 대를 잇게 되는 그런 희망적인 얘기 말이다.     


연재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산문적인 인간의 변명이 길었습니다.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죄송한 마음도 전합니다.
 
한동안 '사춘기야 놀자'를 그려 저와 함께 연재하던 중2 사춘기는, 어제 무사히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습니다. 사춘기를 응원해 주셨던 작가님들께 소식 전하며, 저도 부담하나를 내려놓습니다.
 
'먹이고 재우기 위해 자퇴한다.'라는 다소 무모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고 이곳에 글을 썼지만, 사춘기를 학교 밖으로 내놓고, 많은 것에 책임감을 느끼던 날이었습니다. 곧 그런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항상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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