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하지 않는다.
헤픈 마음은 불편해지길 자처한 마음이다. 타인의 삶이 내 삶과 무관하다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와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흔들림 없이 신념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자주 불편해질 준비가 됐는가를 묻는 문제였다. 최근 한 기업의 비윤리적 영업행태와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 무엇보다 그 일에 대응하는 그들의 작태에 나는 몹시 큰 벽에 가로막힌 무력감을 느꼈다.
제주에서 물건을 배송받는 일은 늘 부담이 따른다. 배송이 가능한 품목도 제한적이지만, 추가 배송비까지 하면, 사려는 물건보다 배송비가 비싼 경우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제주에선 특히, 그 기업이 내세운 무료 배송과 반품, 신속 배송 시스템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구조적인 구원처럼 여겨졌다.
기업은 소비자로 하여금 애초 그들의 마케팅 목표였다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의 인식에 성공했다. 실제 그 기업의 서비스 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누렸던 무료서비스와 신속한 배송 이면에는,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은 노동자와 소상공인이 있었다.
이번 사태에서 기업이 보여준 태도는 단순한 위기 대응 실패가 아니었다. 노동자를 하나의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비윤리적 태도, 과로사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한 흔적을 지우라’는 기업 대표 발언은 추악한 잔인함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이때, 헤픈 마음은 더 소진하기보다, 불편해 지기를 선택한다. 결국, 나는 그 공격적 마케팅과 빈틈없는 서비스를 제공했던 기업 사이트를 해지했다. 복잡하다는 절차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 편리함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번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 전에도 이미 숱한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미온적 태도로 시간을 끄는 사이 그 일들은 조용히 잊혀왔다. 부끄럽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그 기업의 회원 탈퇴를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나 하나 안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라며 익숙해진 편리함 때문에 누군가의 고통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이다.
나 한 사람의 불매 선언이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무력해진다. 하지만 그 기업이 도덕적 반성이 아닌, 법을 앞세운 방어적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도 이 같은 논리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나 한 사람이라도 실행하자는 용기가 나를 부추겼다.
더 이상 노동자의 인권이나 억울한 죽음, 정보 유출과 책임회피 같은 사건이 남의 이야기로 밀려나는 걸 방관할 수 없다. 이건 단순히 한 기업에 대한 괘씸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나는 최소한 이런 비윤리적 방식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제과 관련 기업 제품을 불매하고 있다. 젊은 여성 노동자의 죽음으로 시작된 그 선택은 불편하고 번거로운 여정이 분명했다. 때로는 유난스럽다는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누군가의 고통을 담보로 만들어진 편리함이나 익숙함을 모른 척 소비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나와 낮은 밭담이이어진 소박한 골목 끝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무척 좋아했다.
10년 전, 정착한 제주 바닷가 마을은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빼면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다. 신도시에 살 때 익숙했던 편리한 서비스들이 아직 생길 계획조차 없던 곳이었다. 마을에 마트는 두 개뿐이었고, 배달 서비스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편의점 하나 없던 그곳에서 아이들 준비물 하나를 사려면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했다.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태풍에 마을이 초토화된 일을 겪었다. 밤새 창을 뚫을 듯 들이치는 거대한 비바람 때문에 전기도 물도 모두 끊긴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아파트 단지 안 워싱턴야자나무가 뿌리째 뽑혔고, 우리는 마을 공공장소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신도시에 살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경험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이런 것도 없네, 저런 것도 안 되네. 투덜대기도 했지만, 사실 그 생활이 싫지 않았다. 그 불편함 안에는 서로 돕는 사람의 손길이 있었다. 그것은 따뜻하고 다정한 것이어서 나는 힘들지 않게 불편함에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존재였다. 오히려 불편함을 감수할 의지가 없을 때, 우리는 쉽게 익명의 다수 속으로 숨어 버렸다.
나는 가장 작고 일상적인 선택부터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헤픈 마음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다만, 내 삶이 타인의 삶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 내 정체성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불편함을 감수하는 이 작은 선택이야말로 내가 헤픈 마음으로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작은 증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