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썼던 글
기록하는 순간만큼은 제3자가 될 수 있다. 그 어떤 사건이든 상관없다. 설령 그게 내가 겪은 일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글이 좋았다. 잠시 거리를 두고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게 일도 취미도 글쓰기라 말하는 사람이 됐다. 어느새 손끝에는 굳은살 대신 지루함이 배겼다. 일을 그만둘 순 없으니 취미를 버렸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편협한 의욕만 남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하더라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초심자에게 주어진 혜택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수하거나 기대만큼 못하더라도 스스로 자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욕심이 생겼다. 고맙게도 핀잔보단 칭찬이 익숙했던 삶을 살아와서인지, 욕 먹기 싫단 생각이 커질수록 퇴고 시간은 길어졌다. 세상을 연극처럼, 스스로를 잠시 마로니에 공원 앞 아무 연극의 엑스트라라 여기면 평정을 되찾을 순간에도, 쉽게 열이 올랐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은 더 많았다.
지난 1년간 나는 막이 내리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디테일에 미친듯이 집착하는 대학로 초짜 배우나 다름이 없었다.
신중함은 곧 조바심이 됐다. 입력기에 마우스 커서가 반짝 모습을 감출 때마다 마감 시간은 1초씩 줄었다. 다급한 마음에 잡아먹히는건 시간문제였다. 거리를 두려 애써도 어떻게든 쪽글에는 이름 석 자가 묻어있었다. 품질보증서 마냥 어떻게든 붙어있는 이름들. 그 수많은 이름 앞에서 눈을 가릴 수도 없었다. 정작 그렇게 태어난 모든 글엔 내가 없었다. 제3자는 무슨. 나는 길을 잃었다.
그만두면 무얼 할래? 무책임한 푸념에 쏟아지는 질문이다.
세상이 미쳐도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를 잉크로 옮기겠다던 다짐은 공허해진지 오래.
아 나도 배부르고 등 따시니 딴 생각하네.
눈을 떨구며 머리를 굴려봐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게, 나도 똑같네.
지금은 기자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만두기 한 달 전쯤에 썼던 글을 부끄럽지만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1년 남짓되는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참 많은 고민을 했나봅니다. 평생 일을 해오신 분들에 비하면 분명 짧은 기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일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고민을 글로 남길 때에도, 얼마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할 자격이 있나 골머리를 앓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고민에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참 관료주의적이죠. 직장인으로서,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로서 자격과 가치를 따지는 프레임에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적응은 빠르게 했지만, 제가 추구하던 가치관과 점점 멀어지는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어쩌면 도망쳤을지도요. 그렇게 저는 소위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질 때쯤 사직서를 썼습니다. 평생 원하는 것들을 비교적 쉽게 손에 넣으며 크고 작은 결정을 무턱대로 해봤지만, 평생 직업까지 내려놓은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 도전했던 회사에서는 비록 신입 채용 최종전형에서 떨어져 연초부터는 무직입니다.
속이 곪는 날이 태반이었습니다. 신중하게 '직장'을, '직업'을 선택하는 게 나았겠다 하는 생각에 밤잠을 뒤척인 날이 많았습니다. 새로 이력서를 냈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과 하고 싶은 일 중에 '하고 싶은 일'을 택했건만, 정작 그곳에선 환영 받지 못하고 있단 느낌에 일일 10시간이 넘는 근무 시간 동안 생기없이 지난 날을 곱씹으며 무기력한 3주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첫 날부터 예감이 안좋다고 나불거렸던 염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돌팔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케미스트리, 주파수 등이 잘 안 맞다고 느꼈습니다. 이런걸 HR 용어로 'FIT'라고 하는 듯 합니다. 이전 직장에 사표는 냈으니까, 끝까지 해보겠다고 공언했습니다만, 웃긴건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직자들이 부럽지도 않았답니다. 아마 채용 담당자도 제가 마음이 붕붕 떠있다는걸 눈치채고 절 내보낸 모양입니다.
거절당하는 기분은 언제나 비참합니다. 특히나 소문이 빠른 업계에 몸 담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웃긴건 처음 딱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스스로는 아주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어떻게 말할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제일 걱정했습니다.
아무리 혼자 사는 인생이라지만, 그것도 본인을 설명할 소속과 일이 있을때야 '홀로 서기'도 가능한 법입니까요. 20년 넘게 소속과 업무에 기댔던 정체성이 무너졌습니다. 분명한건, 저는 그냥 소속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혼자로서는 홀로 서지 못하고 있어요.
솔직히 아직도 타인의 시선을 매번 걱정합니다. 생각보다 저는 체면, 사회적 위상을 크게 신경쓰는 사람이었던거죠. 시간은 많아졌는데, 그런 걱정을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꼴딱 지나있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망상하는 것만큼 정신건강에 해로운 일은 없다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된게 확실합니다.
인생 설계를 새로 시작하려니 너무 지쳐버린 모양입니다. 대학 졸업장, 1년 간의 짧은 경력을 양 손에 낀 채 겨우 출발선에 서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건 한 달만입니다.
20대 후반.
누구는 뭐든 시작할 수 있다고, 누구는 약간은 늦었다고 말하는 그런 나이입니다. 유독 연령규범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는 후자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도 여전히 나를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속도는 빠른듯한데 방향이 맞지않단 생각을 계속 품에 안고 살았거든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정작 무한한 선택지가 제 눈 앞에 펼쳐지니 어떤 것부터 골라야할지 참 망설여집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봐야하나 싶어 고민이 되네요.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 등을 골고루 열어두고 제 모습을 기록하고, 반추합니다. SNS는 정신건강에 해롭다는걸 알면서도 세상과 계속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이겨버렸네요.
브런치에 글을 쓰다보면 한없이 가라앉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이렇게 위태로울 땐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듯해요. 기분이 좋아지는 얘기만 쓸까 싶습니다. 진지한 얘기는 진짜 가끔 써야겠어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가 얼마나 읽어줄까 싶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날(무려 2~3년전) 정리하지 못했던 여행기를 모아보려고 합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저는 쉽게 미소를 지으니까요. 싸구려 미끼처럼 쉽게 가라앉는 마음이 다시 누군가를 길어올릴 구명조끼가 될 때까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도 거듭 할게요.
좋아요.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는 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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