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얘는 브런치 브라더의 파우치인데 수개월 전부터 탐이 났었다. 이 귀엽고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돈을 쓸까 말까 고민하며 위시리스트에서 썩히던 중, 품절 사실을 알아버렸다. 언제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땐 없었던 간절함이 생겼다. 문의글도 쓰고 오매불망 재입고를 기다려봤지만 무소용. 반포기 상태로 잊고 살다가 시간 때우러 들어간 홍대 1300k에서 운명처럼 만남. 말을 잇지 못하는 (...) 딱 2개 있길래 친구랑 하나씩 사고 엄청 행복했다. 얘는 먼지 파우치다. 먼지를 꼭 닮아서 주로 먼지라고 부른다. 먼지의 매력을 말하자면 정말 끝도 없지만, 제일 미치겠는 건 볼에 주근깨 6개.
2.
12월 중 열흘이나 흘렀는데도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씨였다. "아 날씨 좋아라. 춥지도 않고. 그치?"정도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엄마와 홍대 데이트, 작은 액세서리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는 가판대에 있는 핀을 들어 내 머리에 슥 꽂아보기도 하고 방울 두 개가 달린 머리끈을 내 묶은 머리에 덧대며 '예쁘네' 하며 웃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을 애인이 아닌 엄마와 흉내 내고 있다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5천 원을 지불한 끈을 머리에 달고,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잊지 않으려고 쉴 틈 없이 떠들었다. "아니 드라마에선 그런 장면 진짜 이해 안 갔거든. 연인이 가판대에서 갑자기 뭘 사고 예쁘다 하고 저게 뭐가 좋나 싶었는데 좋네 엄마. 이거 좋다." 그날 내 엄마의 손을 타고 무심코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왔던 차가운 핀의 촉감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3.
<라라랜드>의 ost. '나중엔 정말 좋은 오디오를 사서 내 cd들을 끝내주게 들을 거야' 싶다가도 이내 '꾸진 오디오라도 음악이 끝내주니 괜찮잖아. 그리고 조금 정들었잖아' 하며 웃어넘기는 일. 멋진 음악을 만나면 최소 몇 달 간은 행복하다.
4. 애정표현과는 거리가 먼 내가, 아빠에게 군것질 사다 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고작 그런 이유로 이것저것 주문하는 카톡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여 보냈다. 첫 번째로는 이렇게 쉬운 걸 난 왜 못하나 하는 생각. 오늘처럼 가볍게 툭 쉽잖아. 두 번째로는 아빠가 카톡을 받고 나서 지었을 표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입술 끝이 살짝 뾰족해지면서 어이없음+웃음+절제된 얼굴 근육이었으리라. 그리고 이토록 자세히 표정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좋았다. 자연스레 얼굴 근육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의 끝에 있는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