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이가 좋은 선생님 만나 배우면 좋겠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꽤 싫어한다는 걸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페미니즘은 사실 상당한 레벨의 인지능력과 공감능력을 전제로 하고, 그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본인의 세계관, 정체성, 가치관에 커다란 '위협'으로 인지된다.
사실, 이건 모든 "~주의"가 갖는 특성이기도 하며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도전'이자 필연적으로 '응전'을 수반한다.
최근들어, 학교에서의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는듯하다. 특히 학교에서 대놓고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조금씩 생기는것 같은데 이에 대한 여론은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만큼이나 양극화되는듯하다.
여기에 나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한 의견을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학교에서의 페미니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마치 죽을만큼 아픈 병에 걸린 환자에게 약이 선택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는 분명 페미니즘의 '덕'을 보았다. 그것은 내 삶의 경험을 돌아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자 내가 그만큼 의미를 부여한 '해석'이기도 하다. 즉, 페미니즘의 효력은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하는것 못지 않게 그것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100% 발휘되는 측면이 있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어떤 약을 먹은 사람은 그 약을 통해 본 변화를 적극적으로 긍정할 때 더욱 그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주길 바란다)
내가 본 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페미니즘을 통해 나는...
1) [동일성] 여자가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2) [차이] 생물학적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겪지 않아도 되는 '아픈' 경험들을 겪고, 특히 그런 경험은 '차별', '폭력', '억압' 등의 이름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3) [이해] 그렇게 여성에 대한 이해가 늘자, 오히려 남성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었다. 특히 남자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눈을 뜨게 되었다
4) [연애] 자위에 가깝던 연애가 보다 더 교류와 소통에 가까워졌다. 왜 내가 차였고, 왜 사랑이 '아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5) [결혼] 가부장 남성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감에서 놓여났다. 훨씬 가볍게, 그렇지만 관계에 대한 여전한 책임감을 가지고 결혼생활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10개는 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페미니즘은 상대한테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을 보고 누군가가 적대적인 태도에서 호의적인 태도로 바뀔 가능성도 전무하다고 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페미니즘은 세계관/정체성/가치관의 변화와 관련된 문제라 그 누가 되었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저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쓴 것은, 증언을 하기 위해서이다.
적어도 내가 겪은 페미니즘에 대해선 기록을 남겨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삶에서는 페미니즘이 자신을 위협하는 강대한 적이자 물리쳐야 할 악으로 간주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 부디 평화가 깃들길 기도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단 한 걸음만 내딛으면, 적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은 그동안 듣지 못한 여성의 목소리이고, 무엇보다도 남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다만,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단 한 걸음을 내딛여야 한다.
“Come to the edge," he said.
"We can't, we're afraid!" they responded.
"Come to the edge," he said.
"We can't, We will fall!" they responded.
"Come to the edge," he said.
And so they came.
And he pushed them.
And they flew.”
#학교에_페미니즘이_필요한_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