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집회 후기 (2019. 09. 28)

우리는 하나다

by 오세준

교대역 2번 출구에 내려서 인파를 뚫고 길건너 kfc에서 블랙라벨 치킨을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ㅠㅠ 음료수 얼음도 안나오고 말이다.

배를 채우고 서초역 쪽으로 올라가면서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예전 촛불집회 때의 그 얼굴들이었다. 밝고 환한 표정들, 구호 사이로 간간히 들리는 웃음소리들.

가슴이 울컥해서 초반엔 구호를 외칠 수 없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흘러나왔다. 눈물을 좀 흘리고 나니 이제서야 목소리가 나왔다. 단전에 힘주고 외쳤다.

"검찰개혁 조국수호, 정치검찰 물러가라, 문재인 최고(뜬금없어 보이지만 반대집회에서 문재인 탄핵이라고 외치는 확성기 소리를 묻기 위해 다 같이 외쳤다)"

누구나 선창을 할 수 있고 누구나 함성을 지를 수 있고 누구나 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을 표현할 수 있는 광장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숫자가 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광장에 서서 확인한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진실로 이 세상이 싫었었다.

얼마나 싫었냐면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여겼을 정도다.
부모도 선생도 아이를 사람취급하지 않고 체벌을 가하고 학교에 가둬서 사육하는 지옥 말이다(80-90년대 얘기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취급하라는 상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싸워온 어른들 덕분에 자란 민주주의라는 나무 그늘 덕분에 살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그 큰 나무가 뿌리채 흔들렸었다. 그 때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시민들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삶을 택했다.

그래서 나간 촛불집회에거 그 수 많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이토록 많다는 것을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듣고 느낀 후 비로서 내 다리가 땅에 닿았다.

머릿 속으로 이곳에 없는 천국을 그리고 이 세상을 혐오하던 나에게 함께 광장에 서서 촛불을 든 경험은 그 어떤 명상과 신비체험도 가져다주지 못했던 깨달음을 주었다.

'두 발을 땅에 붙이기grounding'

오늘 나간 광장에서 어린 아이들들 데리고 온 부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젊은 연인, 나이든 노부부, 약간 취한 목소리로 구호를 연신 외치시던 어르신,이 모든 것이 신기한 눈을 하고 함께 길을 걷던 외국인, 그리고 동남아 출신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로 이뤄진 다문화 가정, 수녀님, 스님, 경찰, 기자, 그 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나, 우리 모두는 분명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한 번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노라는 다짐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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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에서 멸망하는 지구를 떠나기 전 돌고래들은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남긴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그런데 그 돌고래들중 누군가는 반짝이는 백만개의 촛불을 보고 다시 돌아왔다는 풍문이 들리더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상에 다시 발을 붙이고 살게 된 내 얘기기도 하다.



역시 우리는 흥의 민족이다. 집회에 풍물이 없으면 꿀없는 호떡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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