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딸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준 Feb 26. 2020

사랑에 운명은 있다.

고백의 순간도 있다. 

전 고백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쫄보거든요 ㅠㅠ


짝사랑 한 번 하다가 끝내 고백 안 했습니다. 


그 사람이 저에 대해 별 생각 없는게 눈에 훤히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5번의 연애 중 4번은 수동적으로 상대의 페이스에 따라 분위기타고 사귀게 된게 전부였습니다. 




1. 상대방이 첫 만남부터 날 너무 좋아해줘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됨...


2. 상대방이 갑자기 자기 생일날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한참 통화를 하고난 다음날부터 사귀게 됨


3. 상대방이 나한테 전화가 와서 사람들이 말하길 니가 나를 좋아한다는데 한 번 만나보자해서 만나고 사귀게 됨


4. 상대방이 날 너무 좋아하는게 티가 났고 어쩌다보니 사귀고 있음...




절 좋아해주신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위의 네 사람에게는 단 한 번도 진심을 담은 고백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물론 그 당시에는 그걸 몰랐죠. 


전부 사랑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결국 제가 한 유일한 고백은 아마도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때의 용기는 그야말로 제 영혼을 모두 쥐어짜서 낸 것이었으니까요. ㅋㅋㅋ




그게 벌써 거의 10년 전 이야기네요. 




당시 대학원생이던 저에게 교수님을 통해 어떤 젊은 여자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화엄사 음악축제를 가기 위해 대절한 버스를 같이 타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수님이 그렇게 해주라고 한 터라 알았다고 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음악축제는 좋았습니다. 




당시 화엄사 템플 스테이 숙소에 있던 피아노를 치다가 서로 말문이 트여서 대화를 나눴는데 햇살을 받으며 경내 바위에 앉아 있던 모습이 가슴 깊숙히 남아 잊혀지지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당시 대학원 학생회장으로 바자회를 진행하던 저에게 은평구의 모 사찰에서 행정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그 분이 물품을 지원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전 그 답례로 서울에 올라온지 얼마 안되는 그분에게 남산을 구경시켜드리겠다고 했고 그렇게 가벼운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코스는 동국대 입구->남산 구경->남산 돈까스집. ㅎㅎㅎ




그런데 변수가 하나 생겼습니다. 




당시 함께 화엄사에 놀러갔던 여자 동기 한 명이 '사람들이 말하길,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데 강남역에서 한 번 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바로 사귀게 되었죠. ㅎ




그러다보니 그 때 그 분은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되었고 전 가끔 그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 근황을 보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귀던 사람과 결국 헤어지고난 후 어느날 문득 그 때 화엄사에서 만나고 남산을 함께 올라갔던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때부터 갑자기 미친듯이 한 번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직접 네이버 블로그 찾아서 쪽지 보내고 


데이트 신청해서 남산에서 다시 한 번 만나고 


두 번째 만남에서 사귀자고 하고 


그 때부터 바로 손 잡고 계속 연애하다가... 




결국 결혼했습니다. ㅋㅋㅋ






*결론 : 고백할 용기는 나도 모르게 솟아난다*




저는 제가 용기가 없어서 혹은 그냥 좋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귀는 거라 고백 같은거 안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막 없던 용기도 샘솟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그 때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내 안의 모든 용기가 다 집결한 느낌이었습니다. ㅋㅋㅋ




지금은 웃지만 어떤 느낌이었냐면, 거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죽을 것 같은 느낌' 수준이었습니다. ㅎㄷㄷ




반쯤 미쳤던 거죠. 




나중에 서로 사귀고 나서 퍼즐을 맞춰보니 역시 상대방도 저를 처음 본 순간 이후로 잊지 못했고, 당시에 무려 부처님한테 좋은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었으며 제가 오랜만에 쪽지를 보냈을 때도 반가웠다는 등 한 두개가 맞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뭐 운명, 데스티니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운명, 고백, 뭐 이런거에 시큰둥하던 제가 겸허해졌죠. 




아, 사람에게는 운명, 사랑 고백 이런 게 진짜 있는 거였구나...




그리고 아내가 아이를 낳은 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아, 그 때 그 미칠 것 같던 이끌림은 오늘 이 순간과 맞닿아 있구나. 




그때 만약 제가 안에서 간절하게 올라오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평소처럼 쿨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연락하지 않고 넘어갔다면 아내도, 연두도 지금처럼 매일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있더라. 


그리고 그 순간은 죽을 것 같은 간절함에서 비롯되더라는게 제 경험입니다. 




그럼 다들, 운명과 고백의 때를 기대하세요~ 




#고백경험담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