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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4. 2024

[짧은 소설] 분실물 (1)

01. 만원


    초인종을 누르려다 말고 지원은 뒤돌아섰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선명해서 방금 전까지 같이 술을 마신 사람이 이 사람이었나 하고 궁금해할 정도였다. 돌연한 그녀의 눈빛에 덩달아 나도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지원이 한참 동안 지갑을 뒤진 뒤 말없이 내게 건넨 것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다. 택시비인가. 처음에 난 그렇게 생각했다. 얼핏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있었고, 아마도 버스는 끊어진 지 오래일 터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 나는 조금은 어처구니없게도 택시비가 적어도 2만 원은 넘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녀와 나는 공교롭게도 서울의 이 쪽 끝과 저 쪽 끝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얄팍한 생각이었고, 잠시 후에 나는 그녀가 수중에 지닌 돈이 만원밖에 없거나 혹은 택시비에 보태라는 뜻에서 꺼낸 성의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걸 3일만 맡아주세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어색하게 그녀의 손에 걸려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나는 어려운 부탁도 아니란 생각에 선선히 돈을 받았다.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불행을 막을 수는 있는 게 돈이 아니던가.


    “그런데 특별한 건가?”


    “그런 셈이에요. 증거이면서 추억인.”


   증거이면서 추억이기도 한 만 원짜리라. 뭔가 물을 것이 있었지만 나는 그 물음의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떠올리지 못한 데다, 많은 질의와 응답을 취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밀려오는 의문 부호는 덮어둔 채로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택시에 올라서야 손에 쥔 지원의 지폐를 조심스럽게 지갑에 넣었다. 다른 지폐와 섞이는 것이 염려되어서 나는 오늘 그녀와 같이 본 극장표를 중간에 끼어 넣었다. 택시가 목적지에 이르러 멈추는 순간 지원의 지폐가 아닌 다른 돈을 꺼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안심할 수가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폐에 찍힌 일련번호의 끝 네 자리를 기억해 두었다.


    자정을 가르는 택시가 한남대교를 건널 즈음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진동했다. 지원이었다. 진동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녀에게 물어볼 질문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왜 내게 이걸 맡긴 거지?”


    그런데 전화 반대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몇 분을 기다렸을까. 지원의 목소리가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사람이 있죠.”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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