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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4. 2024

[짧은 소설] 오늘의 운세 (3)

03. 포춘쿠키


   자, 그럼 오늘의 운세를 체크해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남자는 서슴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검색창에 ‘오늘의 운세’를 입력하자 쏟아져 나온 추천 사이트들 가운데 남자의 눈길을 끄는 하나가 있었다. 더군다나 무료 가입이었다.


  포춘 쿠키, 운세에 관한 모든 것.


   미래의 운명을 말해주는 달콤한 쿠키. 남자도 언젠가 영화 같은 데서 본 적 있었다. 차이니스 식당을 배경으로 과자 안에 들어있는 비밀스러운 쪽지들은 주인공에게 다가올 위험과 행운을 암시하고 경고했다.

   남자는 쿠키가 전해주는 예언이 어쩐지 신비롭고 그래서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로 예언을 일삼는 인간들은 어딘가 음흉한 구석이 있어 믿음보단 의심이 앞섰는데, 과자의 예언이라면 그 어디에도 사악한 술수가 들어있을 거 같지 않았다. 당장에 그는 ‘포춘 쿠키’에 가입했다. 메일 주소와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끝이었다. 가입절차 역시 단순한 것이 더욱 남자의 맘에 들었다.


    가입을 마치는 순간 작은 차임벨이 기분 좋게 울렸다. 그에게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운세의 관한 모든 것에서 온 편지’를 클릭하자, 예쁜 포장지에 싸인 사탕에 ‘오늘의 운세’라는 문구가 깜박거렸다. 남자는 인생의 단맛 같은 사탕을 가벼이 두드렸다. 그는 그렇게 예언의 과자를 꿀꺽 삼켰다.


    포장지가 스르르 풀리면서 사탕은 순식간에 예언의 쪽지로 변했고, 노란 종이에 적힌 고딕체의 문구는 다음과 같이 간략한 한 줄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려라.’

 

    이런. 이게 무슨 예언이란 말인가, 애매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지금까지 보아오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문장이었다. 이를테면 ‘묶였던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인다’라든가 ‘새로운 문서가 비친다’ 혹은 ‘운이 왔으니 망설이지 말라’라는 식으로 뭔가 그럴듯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게 보통이었는데, 지금 그의 앞에 놓인 운세는 너무나도 모호했다. 그에게 내려진 첫 번째 점괘는 지나치게 남자와 연관성이 적어 보였다. 나와 상관없는 운세라니. 남자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남자는 애를 써서 그가 결정해야 할 무언가를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언가 결심을 내려야 할 일이라는 게 없었다. 물론 인생이란 매 순간마다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긴 하다. 이를테면 당장에 양치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내일 아침을 먹을 것인가 굶을 것인가 하는 것도 결정이라면 결정이라고 부를만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그의 삶에 뭔가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할 ‘마음의 결정’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남자는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중대한 선택의 상황을 절박하게 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에 관한.

 

    순간 남자는 이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그의 ‘예언과 그 확률에 관한 중대한 실험’에 대해 ‘마음의 결정’을 내려함을 말하는 점괘였다.


     아, 이보다 절묘할 수 없는 예언이었다.


    마치 부모의 원수를 갚고자 유랑의 길을 나선 사내가 첫걸음도 떼기 전에 바로 문 앞에서 서슬이 시퍼런 칼날의 원수와 맞부딪힌 것처럼. 그렇다면 사내에겐 이제 두 가지뿐이다. 죽던가 아님 살던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칼을 들어 운명과 싸워야 한다, 그 결과가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그에게는 이제 낙첨된 복권의 예언처럼 다음 기회라든가, 복수를 미룬다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수란 결코 상대를 봐주지 않는 운명과도 같은 존재이므로.


    남자는 곧바로 ‘마음의 결정’을 내려, 개인의 삶에 대한 예언과 그 확률에 관한 실험의 즉각적인 중단을 단호하게 선언했다. 어쩌면 원수를 만난 사내도 스스로를 찔러 마지막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아,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예언은 적중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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