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형석의 손목시계
응급실의 막내 형석의 세련된 자동차는 병원 주차장에 진입했다. 하차감을 뽐내며 형석은 마치 시상식에 레드 카펫에 오르려고 준비하는 배우처럼 자동차에서 내렸다. 평소에는 출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형석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옷차림에 맞게 운전을 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고 운전대를 잡은 형석은 오늘 제대로 폼을 부린 날이었다. 헤어스타일에는 잔뜩 멋을 부리고, 날렵한 양복까지 차려입었다.
오늘은 누가 봐도 멋진 의사라는 생각이 들 거야, 형석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을 무작정 나 잘났다는 맛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자신이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미모가 쉬지를 않네’라는 딱 맞는 가사까지 나오고 있었다.
“좋아, 오늘 하루는 진짜 괜찮을 거야. 오늘의 패션 컨셉은 핸섬한 의사 선생님으로.”
병원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평소와는 다른 형석의 옷차림에 감탄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반응은 퉁명스러웠다. 사람들은 관심이라는 것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셨네요.”
“곧 환자가 도착한다고 연락 왔어요. 준비해 주세요.”
기대했던 대답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 헤어스타일 멋진데. 잘 어울려.”
유일하게 형석의 변화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선배 은경이었다.
“고마워요.”
“어때요? 좀 과한가요?”
“아뇨. 봐줄 만 해.”
“봐줄만하다가 아니라 잘 생겼다 아닌가요?”
“음… 그건 좀 오버다.”
“은경 선배님, 좀 더 자세히 봐주시죠? 제가 원래 좀 꾸미면 끝내주거든요. 평소에 안 꾸며서 그렇지, 제대로 꾸미면 여자들이 다 넘어온다니까요?”
“잠깐. 그 시계는 어디서 난 거야?”
형석은 깜짝 놀랐다. 은경의 날카로운 지적에 형석은 거짓말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아, 이거. 그러니까 이게 여자 친구가 선물해 준 건데.”
“오, 정말 굉장한데!”
“뭐가요?”
“여자 친구가 러시아 여자라며?”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병원에 이미 소문이 파다해. 모스크바에서 물 건너온 물건인 거야?”
“아니 뭐 그게…”
형석은 대충 대답을 회피해버리고 말았다. 이야기가 너무 이상한 곳으로 새어나가 버렸다.
“왼쪽을 봐요. 눈을 위로. 네, 그렇게 따라 하시면 됩니다.”
형석의 첫 환자는 젊은 여자였다.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였는데, 누가 봐도 예쁘장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동안의 미녀였다.
“이번엔 위로. 그리고 아래로도요.”
여자는 형석의 지시를 잘 따랐다.
“음. 그런데 여기가 좀. 얼굴에 혹시 골절이 있을 수도 있어요. 여기가 아픈가요?”
형석은 조심스럽게 여자의 뺨을 살펴보았다. 누가 봐도 맞은 상처였다.
“아아. 좀 아프네요.”
그러면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트 폭력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였다.
사랑하는 일은 가끔 지나치게 상대를 자신의 테두리 안으로 가두어 두고, 구속이라는 말에 겁도 없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말을 붙여버린다. 사람들은 사랑이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시 모르니까 출혈이 있을 경우도 감안해서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여자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형석은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