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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31. 2024

에피소드 8½; 1999 (4)


#5


마지막으로 소영을 만난 날 나는 그녀에게 뉴저지에 있는 다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소영은 내게 첫사랑의 여자가 있었다는 것은 알아도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떠났다. 한 번쯤 두 여자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우연히 어깨를 부딪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먼 훗날 그들은 서로에게 우리 한 번쯤 마주친 적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가 다시 모르는 사람들로 먼 미래에 다시 한번 스쳐지나갈 것이다.


학원을 나온 지 한 달 후 나는 소설 한 편을 끝냈다. 예전부터 생각해 놓은 문장들을 옮기는 과정이라 그다지 힘들지는 않으리란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야말로 기진맥진이었다. 다세대 주택에서 각각의 호수마다 일어나는 열 가지 이야기였는데,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소설은 엉뚱한 방향으로만 달아났고 갈수록 경박하고 조잡해져만 갔다. 소설은 러프에 빠져 트리플 보기쯤으로 끝났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소설을 일단락지은 다음 날 전화가 걸려왔다. 학원이었다. 김 선생의 요지는 다시 학원으로 나와달라는 거였다. 나는 일단 생각해 보겠노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에 신중한 편이 아니어서 가벼운 혀를 놀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게서 그 사실을 듣자마자 단번에 그동안의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과 동창들의 취업한 아들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어머니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느냐 보다는 남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훨씬 더, 아니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타입이었다. 대학까지 나온 아들에게 번듯한 직장이 없다는 사실을 한으로 여기며 언제나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셨으니 이번만큼은 어머니로서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흔들렸다. 그러나 내가 갈등했던 주된 원인은 어머니의 하소연이 아니라, 나 스스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자신감의 급격한 하락세였다. 내 소설은 아무래도 공갈빵 같았던 것이다. 글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해서 도무지 비상구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돈도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나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자꾸만 집에서의 식사는 하숙집의 눈칫밥을 닮아가기만 했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잠시 늪에 빠졌다고 해서 가까스로 되찾은 의지의 실오라기를 단숨에 놓을 수는 없었다. 일 퍼센트의 가능성이 있다면 부딪혀야 한다. 그건 의무이다.

하지만. 의지의 끈이 만약에 썩은 동아줄이라면. 아니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단순했다. 학원의 문을 열어젖히면 돈과 꿈을 바꾼다, 그러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그러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던 끝에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으나 의견이 비등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은 자신이 약해졌다는 피할 수 없는 증거였고 스스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대고만 싶었다.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리고 난 뒤의 반대편에 대한 동경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소영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없었다.


그런데 새벽에 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결론 없는 고민에 지쳐 새벽녘에야 언뜻 잠이 들었는데 신경질적으로 길게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에 겨우 감았던 눈을 떴다. 여보세요. 자는 걸 깨운 건가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수화기 저 편엔 소영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소영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말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혹시 그 일이 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나 자신을 본 것만 같아서이다. 내 방의 어느 면에도 거울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할수록 소영과의 새벽의 통화는 점점 현실감이 없어져갔다.


꿈의 한 가지 특징은 관찰자인 내가 피관찰자인 나를 볼 수 있는 일종의 분열 현상이란 점이다. 꿈은 자신을 대자와 즉자라는 식으로 의도적인 구분을 짓는 것이 아닌, 무의식적이고도 가장 자연스러운 스키조(schizo)이다. 그렇다면 소영의 전화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이라고 단정 짓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어쩌면 내가 본 나는 꿈이라고 믿고 싶은 나의 뇌가 만들어 낸 교묘한 착시현상일 수도 있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쯤에서 조우한 두 사람의 나. 그런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그중에 진짜인 나는. 그것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질문이다. 아마도 둘 다 진실이며 진짜일 것이다. 세상에 가짜란 없다. 모두의 아이덴티는 진짜이다.


소영은 너무나 생생하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은 충만한 현실감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소영이 말했다.


“엉성한 사람.”


비난이었던가. 아니면 동정이었던가.


전화가 끊어졌다. 뚜뚜, 하는 신호음 직전에 나는 이런 소리도 들었던 것 같다.


“나약한 사람.”




#5½


“생각이 너무 많군요.”


현수가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변화였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난데없이 후배 현수에게서 날아온 강속구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약속이나 한 듯이 요 며칠 동안 나는 젊은 여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충고를 얻고 있었다. 나는 학원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대신에 현수에게 최근에 끝낸 소설을 건넸다.


일정 수준의 대인관계를 지닌 사람들의 몇 개의 이름을 지닌다. 현수도 그랬다. 같은 과 후배, 친한 남자후배의 여자 친구, 그 남자후배의 헤어진 첫사랑, 내가 전혀 모르는 남자의 연인. 그러나 그 사랑도 다시 금이 가 버렸다.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쯤이라면 현수의 이런 일들을 복잡한 애정행각쯤으로 단정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도 각각 다른 사람과 빠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란 걸 안다면 그녀의 고단함과 평범함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수와 내가 가깝게 지내는 건 연애사건 때마다 그녀의 주변인물 중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었던 이유도 있다. 비밀이라고까지 할 건 없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한 사람들이 유대감을 지닌다는 건 당연했다. 그 뒤로 잠시 카페에서 내가 종업원으로 일할 적에 손이 부족한 날이면 현수는 달려왔고,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적당한 말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겐 소설이 아닌 책은 읽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카페를 그만둔 이후에도 현수는 가끔씩 내게 편지를 보내왔고 거듭되는 서로의 답장을 통해 서로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현수는 다음 학기에 휴학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최근에 아르바이트로 일한 번역회사에서 그녀보다 아홉 살이 많은 남자의 구애를 거절하기도 했다.


나는 현수에게서 은희경의 코드를 찾는다. 두 번. 언젠가 현수는 그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은희경의 소설을 인용했다. 2년간의 급작스런 연애 사건과 연이은 이별에 대해 현수는 ‘은희경의 소설에서처럼 이십 대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에 관련된다’ 고 말했다. 그 말이 은희경의 소설에 어디쯤 숨어있는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인용임엔 틀림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현수가 막 세 번째 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는데, 현수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남자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어서 나는 그들과 합석하고 있었다.) 그날 마침 내가 들고나간 은희경의 창작집을 펴 들더니 한 구절을 조금 큰 목소리로 읽었다. 현수가 일부러 남자가 들으라는 듯이 그랬는지 진위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구절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는 거야', 였다. 그때 나는 현수 앞에 앉은 남자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잠시 엿보았다.


현수는 상대편의 지위나 나이 때문에 해야 할 말을 주저하거나 하는 타입은 결코 아니다. 현수는 간결하게 말한다. 학원으로의 복귀 문제를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흘린 내게 그녀는 선배는 생각이 많아 일을 그르칠 테니 어서 어느 쪽이든 결단을 지으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평범한 충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현수의 강속구를 받아치기 위해선 그녀 말대로 나는 버려야 했다. 현수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나는 핸드폰의 전화번호 목록에서 학원의 번호를 삭제했다. 선택은 신속하고 정확할 필요가 있다.


현수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체통에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크기로 짐작건대 5월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청첩장이려니 했다. 이번에 또 누구 차례일까. 하지만 아니었다. 안경점에서 온 카드였다.


안에는 활자체로 박힌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외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안경점의 고객관리 프로그램뿐이었다. 활자뿐인 카드는 벙커 속에 빠진 골프공 같았다.


나는 조금 외롭고 쓸쓸해졌다. 생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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