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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31. 2024

에피소드 8½; 1999 (5)


#6


비 오는 날 잠실 야구장. 노게임.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게임은 속개되었다. 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의미였을까.

6월 21일의 일이었다. 그날 내가 응원한 해태 타이거즈는 상대팀보다 많은 안타를 치고도 졌다. 알 수 없는 게 세상만사이다. 좋아하는 여자한테 아무리 점수를 잘 따고 애잔하고 낭만적인 모멘트가 있어도 결국에 그녀의 사랑을 얻는 것은 다른 남자, 뭐 그런 유치한 비유까지 나는 떠올렸다. 1시간 29분이나 경기를 중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비는 막차 시간에 맞춰 다시 내렸고 희뿌옇게 보이는 반대편 신호등을 향해 달려야 했다.

문자 메시지는 즉시즉시 지워버리는 게 보통이지만 그날은 한 손을 우산에 빼앗겨 세 개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남았다. 모두 현수가 보낸 것이었다.


“비 오는 야구장”에 대한 현수의 대답은 “웃긴 영화.”


아침에 사정이 생겨 약속을 취소하자는 내 전화에 현수도 영화 볼 일이 생겼거든,라고 했다. 나와의 약속 대신에 현수가 보기로 했다는 영화는 ‘투 스모킹 베럴스’인가 뭔가 하는 성의 없는 제목이었다. 나중에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또 한 번의 추천을 받았지만 불친절한 제목의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다. 업클로즈 앤 퍼스널 이후로 외화의 제목은 점입가경이었다.

21일에서 22일로 넘어가려는 찰나 두 번째 메시지음이 울렸다. 삐릭.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남자가 좋다”


“남자 주인공 말인가. 일부러 그런 건데.”


나의 대답은 대강 그랬다. 현수에게 건넨 소설의 주인공은 무엇이든 주저하는 남자였다. 나를 닮았는지도. 그러나 여기서 나는 빗나갔다. 눈치 없는 선배 같으니라고, 그녀는 그렇게 속삭였을는지도 모른다. 현수가 결정타를 날린다.


“나 애인 생겼나 봐.”


물음표를 메시지로 보내려다가 새벽 2시임에도 불구하고 궁금함을 못 이겨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누굴까? 성호라고 현수가 대답했다. 성호는 역시 같은 과 후배인데 현수보다는 선배이다. 순간 지난 며칠간 석연치 않았던 머릿속의 조각그림 퍼즐이 짜맞혀졌다. 며칠 전 현수를 만났을 때 현수는 농담투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유달리 연애나 해볼까, 하고 말을 자주 했다. 이어서 현수의 핸드폰으로 성호에게서 걸려왔던 전화, 그리고 그 전화로 성호와 후배들이 있는 술집으로 가던 중에 현수가 내게 뭔가 말을 하려다 주저하던 모습. 물음표가 느낌표로 다가왔다. 그거였군. 그땐 종강시즌이라 단순한 모임인 줄로만 여겨서 나는 성호와 현수를 특별한 고리로 연결하지 못했다. 현수가 던진 패 하나는 마작처럼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모양이 들어맞았다. 아침에 현수가 보기로 했다는 스모킹베럴즈 어쩌고 하는 영화의 파트너는 성호였고, 남자의 우유부단함이란 성호의 뜸 들인 고백이었다.


그런데 현수는 갈등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현수가 성호를 이야기했을 때 나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았다. 그건 현수의 첫사랑의 전개와 비슷했다. 같은 학과 같은 학번이었고 삼수를 했던 남학생이 현수의 첫사랑이었다. 현수는 첫 번째 애인이었던 남자아이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해서도 내게 물었다. 알잖아, 현재로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라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누구나 현수가 새로 택한 성호와 그녀의 첫사랑의 남자가 너무나 여러 가지인 유사점을 지녔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현수의 사랑은 반복된다. 그것이 단순한 반복과 새로운 무언가를 얻어내는 재귀 사이에서 그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되풀이의 과정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다가 그만둔다. 미안하지만 현수의 문제다. 그녀의 자유의지에 의한 일이다. 어떤 조언도 단순한 조언일 뿐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나는 현수가 연애를 하면 당분간은 보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나치리만치 나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현수에 얻어먹기로 했던 햄버거 세트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연애에 빠지면 현수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불안한 예상이 엄습했다. 두 사람, 연애를 위한 연애가 아닐까. 언젠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아니 모든 연애가 그랬던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과거는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의 과거를 다 지우고 싶어졌다. 잊어버리자,라고 다짐하면 정말로 말처럼 그렇게 일순간 잊히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질끈 감고 쳐다보지 않는다면 사라질까. 그러나 지난 것들은 지나간 것이기에 삭제되지 않는다.

그렇게 첫사랑을 닮은 현수의 새로운 사랑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현수는 연락이 뜸해졌고 말상대를 잃은 나는 조금 더 외로워졌다.


1999년 6월 28일 잠실 야구장, 해태 타이거즈는 이 날도 역시 상대팀보다 많은 안타를 치고도 11대 8로 경기에 졌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되풀이된다.



#7


7월 5일은 월요일이었다.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지나있었다. 반환점을 막 돌아 나온 참이었다. 아침에 나는 일기를 썼다. 월요일이면 나는 어김없이 새로운 다짐을 지난주 월요일처럼 다시 적었다. 게으름을 이겨내리라,라고.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새로운 다짐인 셈이었는데,  경구란 표면적으로는 그런 속성이 다분했다. 평범하나 체득하기 어려운. 허나 순간만은 결의로 충천했다.


그러나 내가 지닌 신념의 농도는 항상 엷어져만 갔다. 월요일 오후면 이미 난 게을러져 있었고, 화요일 아침엔 월요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핑계 삼아 새로운 다짐과 계획들을 다음 월요일로 미루었다. 수요일이나 그 외의 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날들은 나른한 오후만 있는 일요일과 명칭만 다를 따름이었다. 월요일 아침만이 제대로 된 시간이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손에 삼백 원짜리 맥도널드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기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라디오에서는 지금의, 1999년의 여름이 20세기의 마지막 여름이라고 했다. 20세기의 마지막 여름은 2000년에 맞이할 텐데. 두 번씩 사는 것이다. 세기말은 언제나 두 번씩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세기말의 여름은 더웠다. 특히 낯선 운전교육은 내게서 더 많은 수분을 빼앗아갔다.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지 나흘째였다. 운동 및 반사신경이 둔한 편인 나는 언제나 남들보다 조금씩 진도가 늦었다. 그날은 S자 코스였다. 강사는 와이퍼의 한쪽 포인트를 가리키며 여기를 노란 선에 맞추어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 그의 지시에 따라 차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한 차례 들썩거렸다. 강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야. 노란 선에 맞추라니까.”


아닌데, 노란 선에 맞췄는데. 노란 선에 맞춘 것은 사실이었다.


“고개를 들어서 라인을 눈에 맞추면 어떡해요.”


나는 코스를 돌 때마다 차의 위치가 선을 벗어나면 고개를 움직여 와이퍼의 한쪽 포인트를 노란 선에 맞추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서툰 운전을 부정하고 고개를 드는 행위로 스스로를 속였던 것이다. 한참 후에야 나는 핸들을 조금씩 꺾어 요령껏 운전하는 법을 터득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의 궤적은 그랬는지도 모른다. 목표한 방향과 벗어나고 있는데도 자신의 시선을 임의로 바꾸어 아무 탈없이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였는지도. 실제의 나는 틀렸는데도 절대로 나는 틀리지 않는다고 우기기만 하면서.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는 포즈를 취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운전 중에 고개를 들어 자신을 거짓된 세상에 들여놓는 일을 하지 않았다. 고개는 그대로 둔 채로, 자신을 속이지 않고서 자신의 도로를 달리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대개 의미 있는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난다.


두 번째의 사건은 그날 학원이 끝난 다음에 일어났다. 뮤직 비디오에서나 일어날 사건이 내 삶에서 재현되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참에 끼익, 하고 굉장한 소음이 일었다. 섬광. 눈을 떠보니 자동차가 내 무릎 바로 1센티 앞에 서있었다. 미안해하는 운전수에게 나는 괜찮다는 손짓을 보이고는 다시 횡단보도를 따라 걸었다. 아직 살아있는 푸른 윙크를 향해 뛰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검은 타이어 자국이 하얀 선을 가로질러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던 건 내가 그 순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대신 차가 돌진해 오는 찰나에 분명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살아있으라.


지금껏 나는 오로지 죽음을 최종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죽음을 위해서 살았던가.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한 나였다.


월요일, 시작이 그럴듯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의 의미가 다가오는 것을 그날은 제대로 보지 못했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화요일 아침에야 비로소 내 마음 깊숙이 닿았음을 알았다. 아침에 나는 옷을 입다 말고 중얼거렸다. 또 한 번의 새로운 시작, 이라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반드시 월요일일 필요도 없다는 것도. 시간은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운전학원으로 가는 화요일의 버스 안에서 나는 핸드폰에 “시작”이라고 입력했다. 바람이 차창 틈으로 숨어 들어왔다.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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