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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02. 2024

에피소드 8½; 1999 (6)


#8


1999년 8월에 현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의 전화였기 때문에 나는 그 내용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직구를 던졌다.


“성호와 헤어진건가?”


현수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에.


“계획이 하나 생겼어요. 휴학하는 동안 돈을 벌어서 잠시 유학을 해보고 싶어. 아님 단기간 어학연수라도.”


“목적지는 뉴저지인가?”


“어? 어떻게 알았죠?”


“우연이 세 번쯤 겹치면 운명이라고 봐도 되겠지.”


“무슨 말이에요?”


“하지만 내가 사랑한 여자는 아니었는데.”


“뭐에요? 수수께끼 같은 소리나 하고.”


현수를 사랑했던가. 스스로에게 물어 볼 질문으로는 마땅하지 않다. 대답은 쉽게, 그것도 아주 단숨에 나오기 때문이다. 노우. 그렇다면 언젠가 그 문장은 마땅히 수정되어야한다. 나와 관련된 여자들 중에 몇 몇은 뉴저지로 떠난다. 그렇게 고쳐놓고보니 세상 누구에게나 적용가능한 문장으로 변하고 만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그것이 운명일테지.


현수가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공부를 위해서, 남자를 잊기 위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관계’ 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다. 관계는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에 결연한 의지로 관계에서 벗어나면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관계 속에서는 언제나 뜻밖의 사건과 뜻하지 않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나는 것이다. 자유를 획득하려고.


하지만 관계를 떠나 자유를 얻게되면 누구나 외로워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관계로 되돌아온다. 자유는 아무래도 최선의 가치이기엔 대가가 크다.

현수는 다음 날부터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8½


1999년 8월까지의 일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맞지 않았다. 그는 다만 경고하려 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편리를 위한 임의적인 개념일 뿐 절대적이거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중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폐기 처분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무언가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1999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모든 일이 일어났다. 또한 별로 나빠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제자리이겠거니 하고 뒤를 돌아보면 나는 어느새 꽤 먼 거리에 와 있었다.


8월의 어느 날, 곰팡이가 핀 지하실을 정리하다가 나는 생일 카드 하나를 발견했다. 93년이었던가 첫사랑이었던 여자아이가, (그녀는 이미 두살배기 딸의 엄마일테지만 난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스물한살일 것만 같았다) 내게 준 카드였다. 안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서른 두살이 아닌 스물 두살에 너를 만나 다행이야.’ 라고.


하지만 어느새 나는 스물 두살보다는 서른 두살이 가까운 나이였고, 은행의 잔고는 227, 601원이었다. 일년 뒤면 스물여덟 혹은 스물아홉인 나이가 되고, 은행의 잔고는 다달이 자동이체되는 핸드폰 요금으로 바닥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어슴프레한 새벽에 나는 다용도실의 피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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