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 손화수 옮김, 『멜랑콜리아 1,2』, 민음사, 2023.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왜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들만 나올까. 우리 삶의 진실을 이야기 한다는 소설에는 왜 인간이 ‘지겹게 먹고 자고 싸는’ 장면은 나오지 않을까. 극적인 사건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반복되는 일상들이 삶의 진실에는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 비록 그렇게 서술하는 것이 재미없을지 몰라도 그런 작품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계절이 지나고 사람은 떠나고, 여차저차한 삶의 파랑 속에 그 의문은 묻혔다. 언제나처럼 삶은 무료해보였고 시끌벅적한 영상물들에 눈길을 던지며 낙심한 채로 잠에 들면 아침 햇살이 나를 침대 밖으로 몰았다. 그러면 똑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멜랑콜리아>가 이 잊힌 의문을 수면 위로 꺼내 올렸다. <멜랑콜리아>의 중심 인물인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19세기 말에 실존했던 인물로, 이 소설에서는 약간의 강박장애를 가진 화가로 등장한다. 그는 그의 자아상과 그를 둘러싼 몇몇 인물, 헬레네 빙켈만이나 한스 구데에 대한 생각을 강박적으로 반복한다. 그 강박적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어떤 문장은 아주 약간의 변주만 거쳐서 스무 번 정도는 나오고, 그런 문장들이 무수하게 이어진다. 이 정도라면 건조하게 ‘반복한다’고 표현하기보다 ‘지독하다 못해 고통스럽게 반복한다’고 말하는 편이 책의 서술을 묘사하는 데에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문장이 반복되는 동안 이 책의 서사는 나선형으로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 몇 백 쪽에 걸친 서술이 채 하루도 전부 다루지 못할 정도다.
<멜랑콜리아2>의 서술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멜랑콜리아2>는 라스의 누나인 올리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극중에서 올리네는 동생인 라스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백발의 노인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금방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잘 알던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도 분별하지 못하는 등 전형적인 치매환자의 모습을 보인다. 올리네는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생선을 사러 가고, 아랫배가 무거워 화장실에 가고, 남동생 쉬버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그의 집에 가는 행동을 수시로 하면서 거의 동시에 까먹는다. 먹고 자고 싸는 지겨운 반복이 여기서는 더 노골적인 것이다. 이 반복은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는다.
이 소설의 내용은 이게 거의 전부다. 사실상 서사랄 게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멜랑콜리아1>의 후반부에 나오는 짤막한 현대의 이야기가 이 무채색 덩어리의 소설에 흐릿한 윤곽선을 그어주는 듯하다. <멜랑콜리아1>에서 한글 번역본 300쪽에 달하는 고문의 끝에 잠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설 작가인 비드메다. 그는 우연히 들른 국립 미술관에서 라스의 작품을 보고 모종의 신성한 경험(339)을 한다. 이를 계기로 어린시절 한 번 탈교했었던 노르웨이 교회에 다시금 입교하고자 한다. 그런데 교회에 가기로 한 날 날씨부터가 심상치 않다. 폭풍우가 몰아쳐 비드메의 옷과 신발을 흠뻑 적시고, 비드메의 의지는 실시간으로 꺾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입교 상담을 요청했을 때 상상했던 ‘깊은 지식과 현명함을 지닌 나이 지긋한 남자 사제’(353)가 아니라 젊은 데다 성적 매력을 갖춘, 신학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교회에 회의를 가져보기도 한 여성 사제가 그를 맞는다. 라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보르그외위섬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않았다”(341)
한 마디로 모든 현실이 비드메의 기대를 벗어난다. 현실은 비에 젖은 신발처럼 무겁고 질척거린다. 그러나 결코 현실이 비드메를 배반한 것이 아니다. 실은 비드메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뿐이다. 실로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빛”(121)은, 우리에게 경이로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고독과 고통의 원천이 된다. 이 책에서는 소위 예술가적 감성이라고 하는 것이 천재의 징표라든가 낭만이라든가 하는 허술한 말들로 포섭되지 않고 아름답고 씁쓸한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가끔 이렇다 할 목표 없이 터덜터덜 거리를 걸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선명하게 흰 눈자위로 스며들 때, 일렁이는 노을에 마음을 던질 때, 고요히 흐르는 강물의 리듬에 몸을 맡길 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이 책에는 구겨지지 않은 채로 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묻은 채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몸을 맡겼다. 그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그것은 자신의 그림 속 일부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그렸던 가장 만족스러운 그림을 보며 느꼈던 바로 그 감정과 비슷하다는 생각.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느낌 속에서 헬레네 빙켈만의 머리카락 사이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을 가득 채워 오는 그녀의 빛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