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터는 강아지가 귀여워졌다. 그 전에는 그냥 개,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길가에서 네발로 통통거리는 강아지들을 힐끗거리다 강아지 주인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심지어 아주 가끔은 “키워볼까?”하는, 책임감을 동반하지 않은 망상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건 아마 친척집에서 그 녀석을 만나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유난히 작고 하얗고 복슬거렸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강아지. 그 친구, 내가 그 집에 처음 들어갈 때에는 좀 짖는가 싶었는데 몇 번 쓰다듬으니 가만히 등을 내어주었던 순둥이였다. 그 모습에 흐뭇해진 나는 그 녀석의 등을 한참 동안이나 쓸어주었고, 그러다 잠깐 손을 쉬면 그 녀석은 얼른 뒤를 돌아보며 앞발로 내 손을 짚곤 했다. 나중에는 아예 내 무릎위로 올라와서 잠을 자기도 했다. 다리 위로 전해지는 묵직한 체중과 체온을 고요히 느끼고 있자면 거의 신성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함. 번잡한 사회적 의식들을 단번에 제압하고, 들어오는 낌새도 없이 내 안에 자리 잡는 그 기운. 부모님이나 애인 같은 경우—그러니까 내가 그들과의 관계에서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하기 보다는 따뜻함을 느끼는 나 자체를 만들어준 사람들—를 제외하면, 그런 따뜻함이 기억에 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하나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갔던 동사무소에서였다. 당시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등록해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문을 인식하는 기기가 충분히 똑똑하지 않은 탓인지, 지문을 가져다 대는 사람의 미숙함 탓인지 담당 공무원 아주머니가 민원대 밖까지 나와 내 손가락들을 잡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스캔하는데 도움을 줬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쪽이나 나나 무슨 의도랄지 감정이랄지 하는 것들이 섞일만한 상황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람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나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났다. 너무 이상하잖아. 태연하고 차가운, 으레 우리 사회에서 짓고 있어야 할 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인데. 내 굳은 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들은 앙 다문 입술사이를 기어코 비집고 나왔다.
비슷한 느낌을 접한 적이 또 있다. 방황하던 이십대 후반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였다.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할 때, 한 부서를 맡고 있던 모 과장님이 나의 임시 사수 역할을 맡았다. 오십 전후의 그 분은 매일 새벽까지 술을 먹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출근해야 하는 모 대기업에서 버티다가, 사기업이 직원에게 눈칫밥을 먹이기 시작하는 나이에 퇴사하고 다른 길을 준비해 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 분은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는지 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초면에 학교를 묻고, 고향을 물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도 부모님이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서울사람이 아니라고도 했다. 회식자리에서는 사회생활에서 음주의 필요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놨고, 마누라는 지겹지만 젊은 여자를 만나면 다르다는 말을 하고는 겔겔거리며 웃었다. 일을 금방 배우던 나를 좋게 보았는지, “넌 내 아들이다!”하며 혈연을 뚝딱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농담으로라도 내가 좋아할만한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맞지 않는 상사와 일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하는 뻔한 면접 질문에 일화로 등장하기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님이 건네는 작별의 악수에는 그런 말들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있었다. 십 년 전 동사무소에서처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크고 건조한 손에 어려 있던 그 따뜻함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요즘은 날이 많이 춥다. 으레 겨울이 그런 거겠지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게, 한 번씩 깊은 한숨을 내쉬게 하는 그런 형태의 추위가 이번 겨울에는 있다. 웃풍이 드는 구축 건물 자취방 구석에 혼자 누워있어서일까, 이불을 끌어당기고 몸을 웅크려 봐도 어쩐지 쌀쌀한 기운은 다스릴 수 없다. ‘쌀쌀’에서 두 모음을 다듬고 끌어내려서 ‘쓸쓸’이라고 쓸까, 하다가 만다. 그 대신 잡생각에 빠져본다. 한국에 비주bisou가 있다면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을 때나 여행을 하며 며칠 밤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작별을 할 때 포옹을 할 수 없다니 끔찍한 일이다. 이 땅에서 악수를 건넨다는 건 일종의 공격일까, 왜 그걸 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그리도 불안해 보이는지. 그러다가는 또, 그래, 봄…!. 봄이 온다면 모든 게 괜찮아 질 거야. 현관문 밖으로 한 걸음만 발을 내딛으면, 따스한 봄바람이 온몸을 감싸주는 그 계절이 오면…, 하고 생각한다. 배가 고파 별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컴퓨터 책상에 일인분의 밥을 차리고 수저 한 벌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