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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침대에서 뒹굴다 유튜브를 켰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어떤 스님의 얼굴 옆으로 ‘사랑도 결국 하나의 욕망’이라는 섬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도 하나의 욕망, 그러니까 불교적 입장에서는 공허하고 놓아주어야 할 것. 그간의 불교에 대한 상식만으로 영상 내용의 대강이 그려졌다. 어쩌면 나의 지식을 확인받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지적 허영에서 비롯한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나 잠깐의 망설임 끝에, 끝내 그 섬네일을 누르지 않았다. 그 영상을 보고 나면, 꼭 절대적인 영역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무언가가 시궁창 속으로 처박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분명 나는 종교가 없는데 무엇이 왜 절대적인 영역으로 남아야 하는 것인지. 감정 과잉의 2000년대 발라드를 비웃으면서도 사랑은 없다는 가사를 노래하는 요즘 아이돌에게는 왜 나도 모르게 심술이 나는지. 인간의 감정은 호르몬 놀음이라는 과학자들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그 말을 주워섬기기 싫은 건 왜인지. 그것을 하게 되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그동안의 모든 고민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처럼 구는 세상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에 나는 즉각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동시에 격정적으로 찬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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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나는 타인의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랑을 언제나 그리워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접근하면 그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은혜도 모르는 구제불능의 고양이처럼 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근거가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아마 꽤 많은 사람이 느꼈을 텐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너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 적어도 거기엔 어딘가 좀 음흉한 데가 있지 않은가? 타인의 특유한 삶을 대신 살아낼 수 없는 만큼 어떠한 말도 적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 모르지 않을 텐데, 그 말이 실은 자기 인생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 해서는 안 되었던 것에 대한 후회는 아닌지. 그리하여 드넓은 세상을 모두 자기로 환원하는 유아적인 발상은 아닌지. 애정 어린 조언이란 실은 아차하면 빨려 들어가는 자기연민의 심연이 아닌지. 그런 논리정연한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세상이 좀 우습다. 그렇게 갈망하던 사랑도 결국 부질없는 자아 확장의 일환인가. 그러나 침대에 누워 그런 생각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나도 당연히 그것에 초연한 현자가 아니다. 원래도 별로 없었던 친구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줄고 있다. 별안간 스며드는 구옥 자취방의 한기밖에 더는 곁에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인생은 단숨에 참을 수 없이 허망해져버린다.
3
대학교 철학 수업에서 신존재논증을 배우고 몇몇 기독교인에게 그것을 써먹던 못된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에 그들을 만나면서 두 번 놀랐다. 기묘한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을 보고 한 번, 논증에 흔들리는 그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쾌감뿐만 아니라 죄책감과 슬픔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또 한 번. 물론 소시오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일말의 죄책감은 당연히 느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슬픔은 왜 나를 따라왔을까. 어쩌면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에게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그들에게서나마 이어지기를 가슴 깊은 곳에서는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함투성이인 나, 그리하여 스스로도 수용하기 어려운 나를 벗어나 기꺼이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 그런 기쁨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요즘 들어 어떤 의미에서든 종교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눈동자 너머로 사람의 역사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사건들을 더듬어 보게 된다. 그들을 결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내가 뿌린 독에 가장 깊게 중독된 것이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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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누워 내가 사랑하는 여러 존재들을 떠올려 본다. 고요히 흐르는 물. 초여름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 뭉그러지는 노을. 벌거벗은 얼굴, 그리고 그 안의 둥그런 코끝, 솜털, 눈가의 주름. 나를 단숨에 무장해제 시켜 가장 위험한 상태로 만드는, 그래서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순간들. 성과와 효용의 체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구원들. 결코 머무를 수 없는, 아차하면 중력에 의해 끌려 내려오게 되는 일들. 분명히 있었지만 없었다고 해도 증빙할 방법이 없는 꿈결 같은 사건들. 모든 것을 긍정하거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날들.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 마음속 깊이 품은 이미지들을 가만가만 쓸어내리고 있자니 문득 열린 창문 사이로 아련한 3월의 바람이 느껴진다.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