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말했다. “하루에 세 번 이상 하늘을 보지 않으면 잘못 살고 있는 거래.” 그 말에 그날 처음 하늘을 보았다. 발언 이후에 본 것을 너그럽게 카운트해준다고 해도 오늘 하늘을 본 횟수는 일 회였다. 앞에서부터 세도, 뒤에서부터 세도 일 회. 지나간 가까운 날들도 다르지 않았다. 파란 하늘을 향하기보다는 걸핏하면 땅에 드리워지는 시선을 가졌던 때, 열일곱 살이었다. 그러나 경솔하게 열일곱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늘을 보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도 느끼지 못했던 시간이 그 이후로 지겹도록 펼쳐졌으므로. 그런데 잠깐, 지금 ‘펼쳐졌다’고 말을 했던가? 그렇다면 너무 늦기 전에 그 말을 수정하는 게 좋겠다. 그런 식의 시간은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시간은 방심한 의식의 틈새로 고요하고 은은하게 퍼져나가 영원을 느끼게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꼭 시계 속에 숫자로만 존재하는 ‘시간’은, 언제나 그 날렵한 시곗바늘을 휘두르기 직전의 회초리처럼 잔뜩 추켜올리고 서 있다.
실제로 목적지를 정하고 걸을 때면 늘 그런 기분이다. 특정한 어디로 향해야만 한다는 데서 발생하는 은밀한 스트레스를 감추기가 어렵다. 그러면서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똑바로 갈 수 없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의 빨간 길을 태연히도 따라간다. 최적화의 금자탑에 또 하나의 돌을 올렸구나. 쉽게 만족하면서 동시에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조금 한심해지는 건 왜일까. 언젠가는 낯선 골목에서 홍콩 영화에나 나올법한 멋진 여관에,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봄꽃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머지않아 본래의 목적에 간단히 제압당하고 만다. 때로는 비참할 정도다. 매혹은 비겁자에게 다시는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모든 진정한 용기가 손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당신 같은 사람들은 모든 진정한 용기를 살짝 피하면서… 당신 같은 사람들은 돈을 존경하는데, 돈에 대한 존경심은 당신들이 다른 것을 높게 평가하는 일을 막습니다.”(38)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래도 정말 가끔은 기적 같은 순간이, 그러니까 진짜 시간이 찾아온다. 몇 년 전 산책을 할 때였다. 정처 없이 느릿느릿, 걷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춤에 가깝게 움직였다. 의식에 그려지는 것은 바닥에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발바닥의 감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섰다. 그 순간 낯설지만 결코 위협적이지 않은 고양감이 손끝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의 사거리, 도시의 시계탑 옆에서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는데, 불현듯 세계에 대한 표현하기 힘든 감정과 그것과 관련해 영혼에서 강렬하게 우러나오는 격렬한 감사의 감정에 휩싸였다.”(28) 아무것도 아닐 때에 비로소 주어지는 모든 것, 그것을 마주했다. “…마치 시간에게 얼굴이 있는 것처럼 시간을 바라보았고, 시간 역시 묘하고 다정한 눈으로 나를 조용히 관찰하는 것 같았다.”(94) 이럴 때면 결정적인 구원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망상에 잠겨들기도 한다. 매번 같은 나무에 머리를 들이밀고 열과 성을 다해 코를 벌름 거리는 개처럼, 온몸을 던져 빈 곳을 응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