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커뮤니티 리빙을 내 손으로 시작할 생각은 아니었다. 요즘 코리빙 스페이스나 쉐어하우스들이 얼마나 많나. 수만큼이나 종류도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그 많은 공유 주거 중 하나를 찾아 들어가보려고 했다. 새로 만드는 것보다 합류하여 거기에 힘을 보태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니까. 그래서 현재의 커뮤니티를 시작하기 전에도, 프리퀄에 해당하는 망원동 커뮤니티를 시작하기 전에도,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하지만 ‘딱 이거다!’ 할만한 곳은 없었다.
대다수의 쉐어하우스
대다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화이트톤에 밝은 원목 톤의 이케아 가구로 채워져 있군... 노룩 패스! 하얀 세상에 들어가기엔 난 낡고 오래된 것을 너무 좋아해!
A 코리빙
겉보기에 좋아 보이나 생활 만족도나 커뮤니티 활성화 정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구먼, PASS!
B 코리빙
커뮤니티는 좋아 보이는데 강남에 있구먼… 나의 영혼은 강남의 땅과는 좀 안 맞아 ㅜ 안녕 -
C 쉐어하우스
집마다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기획, 흥미로운데~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 등등. 취향과 취미생활의 공유가 같이 살면서 겪게 될 각종 차이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까?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하우스메이트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진 못했다. 내가 아무리 농구를 좋아해도 농구를 좋아하는 누구나를 품을 만큼 내가 농구에 미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내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결국 취미같은 What, 무엇보다는 그 사람의 태도와 사상, Why에 있었으니까.
그런 맥락에서는 내가 오래 몸담았던 소셜벤처계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던 코리빙 C가 내가 확실히 좋아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보였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동료들을 만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 얼마나 든든할까 설렜다. 그렇지만 설렘을 넘어서는 두려움도 있었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이상과 대비되는 찌질한 내 모습 때문이었다. 그 집에는 지인도 있을 것이었고, 지인의 지인도 있을 터였다. 그 중엔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직장 동료의 친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오늘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그 동료 때문에 돌아버리겠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냥 좋은 하루였다고, 하하하...하고 으레 하는 말만 하는 내가 그려져 결국 마음을 접었다.
댄디하기 그지없던 내 전 직장 동료 D의 가족들은 그가 직장에서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일잘러임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 주말에는 집에서 늘어져 영화만 보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런 그를 놈팽이로 오해하고, 밖에서 안 잘리고 용케도 밥벌이를 이어가는 그를 신기하게 보는 모양이다. 반대로 클라이언트가 어이 없는 요구를 하거나 팀 회식에서 다같이 술을 꽤 마신 밤에도 한치도 흐트러지는 순간을 보여준 적 없는 (내가 너무 흐트러져서 못 봤을 수 있지만...) D이기에 그의 가족들이 보는 게으르고 속터지는 카우치 포테이토 D의 모습을 상상 조차 할 수 없어, 상상을 쥐어 짜기 위해 그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본 기억이 난다.
그만큼의 잠금해제 역할을 하는 게 '집' 아니겠는가.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가는 곳. 일터에선 ESTJ였다가 집에 돌아오면 INFP가 되기도 하는 그런 곳. 과연 기성의 쉐어하우스나 코리빙에서 나는 잠금 해제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니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DIY(Do It Yourself) - 직접 한다. 나와 나 같은 미스핏(misfit)들이 잠금해제될 수 있는 안전 기지. 잠금이 해제된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환대하는 커뮤니티. 나의 손으로. 아니,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잘한 결정이었을까? 시작할 때로 돌아가도 나는 과연 똑같은 결정을 할까? 아마도. 하지만 때론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꼭 직접 열어야 속이 후련했냐아아!"
직접 한다는 게, 우리의 손으로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게 생각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었다. 망원동 쓰리룸 시절보다 조금 더 확장하는 수준으로 생각했던 건 정말 안일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내 예상과 기대를 깨부수는 일들이 번번이 일어났다.
혹시 자신만의 커뮤니티 하우스를 열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잠깐만 그 결정 붙들리고 있어보라. 제-발. 자세한 이야기는 뒷 챕터에서 다시 나누겠다. 책의 나머지를 마저 읽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