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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Jan 03. 2022

웰컴 투 서울눅스!

Seoul Nooks, 우리들의 생츄어리

이 글을 쓸 때다. 창의적인 작업을 할 땐 집 말고 제3의 공간에서 하는 걸 좋아한다. 이날도 공간빨을 한번 받아보자고, 소셜미디어에서 회자되고 있던 힙스터 스타일 공유 오피스를 찾았다. 개방감이 있고 채광이 좋은 곳이었다. 모던한 인테리어가 참으로 멋졌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딘가 쿨해보였다.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기에 본의 아니게 공간 가운데 위치에 앉게 되었다. '좋아. 멋진 공간의 크리에이티브 에너지를 쭉쭉 흡수해서 밀린 글을 한번 써보는 겨!!!'라고 속으로 파이팅을 외쳐보았지만 이런, 15분이 지나도록 첫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 있을리가 만무한테 자꾸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쓰였다. 으윽....마치 내 피부에 여러개의 눈이 달린 것 같이 예민하고 뻣뻣해졌다. (갑분 MBTI 고백하자면 MBTI 중에서 가장 예민하다는 INFP다...) 괜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배에 힘을 줬다. 다들 하는 작업 조차 뭔가 있어보여... 내 문장이 너무너무 초라하고 부끄럽네...? 사람들이 혹시 지나다가 의도치않게 슥 내 화면을 보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화면을 띄워놓고는.... 원래 목적과는 다른 일을 하기 시작, 아니 하는 척 했다. 뭔가 있어보이는 공간의 있어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있어빌리티'를 장착해야할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눈치는 없어선 안될 생존 능력이고,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옷을 차려입어야 함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 예민하고 소심하기로 유명한 INFP로서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내가 나답게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나 힘겨운 일이다. 


그렇지만 나답게 존재하고자 하는 고집은 누구보다 있어서, 코너에 있는 구석공간을 좋아한다. 전체 공간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지만, 부분적으로 가려져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아늑하게 느낀다.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와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보고 원하는 이야기를 쓴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서로 조금 더 가깝게 앉아 그 코너를 전체 공간으로부터 분리하는 벽을 성벽삼아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 나의 찌질한 짝사랑 이야기, 처절히 후회하고 있는 실수들, 오래된 트라우마와의 전쟁 등. 


물론 아예 다른 사람들이 없는 독립적인 공간이라면 더욱 안전하겠지만, 그 안전함이 내게 주는 유익이 그리 크지 않았다. 곧 지루해져서 딴짓에 빠지고, 투머치씽킹의 황제답게 생각의 늪 속에 빠져들며 침잠하고 우울해져졌다. 그런 곳에서 나는 나다움으로 가기 전에 '나'를 잃어버리곤 했다. 열려 있는 한쪽면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결성이 되려 나를 지탱시키고, 언뜻 언뜻 들려오는 이야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 살아있게 했다. 적당히 폐쇄되어 있고, 적당히 열려있는 공간은 따뜻하면서도 활기 있다. 나는 그런 공간,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연을 맺게 된 후암동 파이브룸 집은 그런 커뮤니티를 하기에 좋은 뼈대를 가지고 있었다.


Photo by Redd on Unsplash ,  Kinga Cichewicz on Unsplash, Clay Banks on Unsplash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인다. "아니, 이 동네에 이런 집이 있다니", "한국에 이런 커뮤니티가 있다니" 출입구부터가 매우 헷갈려서 찾아오는 길 영상을 보지 않고선 99프로가 집을 못 찾고 연락이 온다. "거의 온 것 같은데, 도저히 못 찾겠어!" 입구부터 시작해 내부 여러 공간까지 조금씩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어 그렇다. 


"우와, 이 집에 눅(Nook)이 정말 많다!" 


공간의 치수를 측정하기 위해 같이 동행한 친구가 우리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외칠 만했다. 의외의 장소에 숨겨져 있거나 부분적으로 가려진 공간들을 영어로 Nook(눅)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한국어에는 적당한 대치어가 없는데, “어, 여기에도 공간이 있었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공간을 대체로 눅(Nook)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나도 처음 이 집을 볼 때 그런 반응이 연신 터졌다. 아니, 여기에 방이? 여기에 이런 공간이? 


친구가 공간에서 느낀 첫인상평을 듣다마자 이 집의 핵심을 콕 잘 집어냈다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이곳에서 만들어갈 커뮤니티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기도 했다. 눅... Nook... 내가 좋아하는 공간. 그 안전감 - 속으로 되뇌이다가 그렇게 우리 이름이 되었다. 서울눅스(Seoul Nooks). 



우리집의 Nook 공간들 Speical thanks to noahjuun (https://www.instagram.com/noahjuun/)



이후 이 커뮤니티를 애정하는 친구들은 여기를 생츄어리(Santuary: 보호구역)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사회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는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에 대한 목소리는 이곳에서 잠잠해진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열망,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서운하지만 고집스럽고 우직하게 지켜내는 신념, 사회적 성공에서는 벗어나지만 더 행복한 길을 선택하는 것, 이 모든 것을 긍정한다. 괜찮아. 너무 잘하고 있어. 정말 멋있어. 그렇게 진심으로 응원하고, 또 각자가 더 자기답게 살아감으로 그 응원에 진정성을 더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팬이 되고,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기도 한다. 각 존재가 가림막을 만들고 서로에게 안전하고 아늑한 Nook을 만들어준다. 서울눅스란 이름은 이 집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 관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 Nooks를 써서 Seoul Nooks가 되었다.


한편 이 공간의 한쪽 면은 열려 있다. 새로운 사람이 늘 등장한다. 새로운 관점이, 새로운 세계가, 새로운 우주가 지속적으로 다가온다. 긴장과 마찰, 그 속에서 질문이, 그리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생적으로 평화로울 수만은 없지만 지루할 틈이 없고, 때론 편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안전함을 잃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 한껏 유치해져도 좋고, 눈치 보지 않고 진지한 이야기를 장시간 꺼내놓아도 좋다. 솔직한 당신 모습 그대로. 


웰컴 투 서울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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