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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Oct 30. 2022

꼭 직접 열어야 속이 후련했냐!

사서 고생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여럿이 같이 살고 싶다고 꼭 코리빙 스페이스를 직접 열진 않아도 된다. 아니, 그러지 않는 편을 왠만하면추천한다. 요즘 코리빙 스페이스나 쉐어하우스들이 얼마나 많나. 수만큼이나 종류도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망원동 쓰리룸에서의 커뮤니티리빙을 하기 전에도, 헤어지기를 결정한 이후에도 그 많은 공유 주거 중 하나를 찾아 들어가는 것을 고려해보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 나와 결을 비슷하게 하는 커뮤니티가 이미 존재한다면 새로 만드는 것보다 합류하여 거기에 힘을 보태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니까. 그런데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딱 이거다!’ 할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겉보기에 좋아 보이나 생활 만족도나 커뮤니티 활성화 정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평을 듣고 A 코리빙, 패스. 커뮤니티는 좋아 보이는데 강남에 있구먼… B 코리빙, 안녕. 대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해 깔끔한 화이트톤에 밝은 원목 톤의 이케아 가구로 채워진 대다수의 쉐어하우스는 낡고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빈티지 애호가로서 노룩패스!


어느 정도 멤버 선발 절차가 있거나 기준이 있는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집마다 취향이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쉐어하우스 A의 콘셉트는 인상적이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사람들,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 등등. 취향과 취미생활의 공유가 같이 살면서 겪게 될 각종 차이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까? 흥미로운 기획에 경험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생겼지만, 선발절차가 없다는 점에서 하우스메이트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진 못했다. 상대가 농구를 좋아한다고 농구를 좋아하는 그 상대까지도 좋아할 수 있을까. 전혀 다른 바둑을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이, 내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취미보다는 그 사람의 태도와 사상이었으니까.


내가 오래 몸담고 있던 소셜벤처 업계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던 코리빙 B가 내가 확실히 좋아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옵션으로 보였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동료들을 만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 얼마나 든든할까 설렜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을 열망하는 이상 아래 내 찌질한 모습까지도 드러내 보이기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 집에는 지인도 있을 것이었고, 지인의 지인도 있을 터였다. 그 중엔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직장 동료의 친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오늘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그 동료 때문에 돌아버리겠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냥 좋은 하루였다고, 하하하...하고 으레 하는 말만 하는 내가 그려져 결국 마음을 접었다. 


댄디하기 그지없던 내 전 직장 동료 D의 가족들은 그가 직장에서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일잘러임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 주말에는 집에서 늘어져 영화만 보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런 그를 놈팽이로 오해하고, 밖에서 안 잘리고 용케도 밥벌이를 이어가는 그를 신기하게 보는 모양이다. 반대로 클라이언트가 어이 없는 요구를 하거나 팀 회식에서 다같이 술을 꽤 마신 밤에도 한치도 흐트러지는 순간을 보여준 적 없는 (내가 너무 흐트러져서 못 봤을 수 있지만...) D이기에 그의 가족들이 보는 게으르고 속터지는 카우치 포테이토 D의 모습을 상상 조차 할 수 없어, 상상을 쥐어 짜기 위해 그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본 기억이 난다. 


그만큼의 잠금해제 역할을 하는 게 '집' 아니겠는가. 자연스러운 나로 돌아가는 곳. 일터에선 ESTJ였다가 집에 돌아오면 INFP가 되기도 하는 그런 곳. 과연 기성의 쉐어하우스나 코리빙에서 나는 잠금 해제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니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DIY(Do It Yourself) - 직접 한다. 나와 나 같은 미스핏(misfit)들이 잠금해제될 수 있는 안전 기지. 잠금이 해제된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환대하는 커뮤니티. 나의 손으로. 아니,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






"꼭 직접 열어야 속이 후련했냐아아!" 


영화 <해바라기> 속 그 유명한 명대사가 탄생한 순간


그 시점으로 돌아가도 나는 다시 같은 결정을 할까 물으면, 여전히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거라 생각도 한다.하지만 때로는 뒤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직접 한다는 게, 우리의 손으로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게 생각보다도 훨씬 힘든 일이란 걸 배웠다. 망원동 쓰리룸 시절 4-5명이서 이미 같이 지냈고, 거기서 조금 더 확장하는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은 정말 안일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내 예상과 기대를 깨부수는 일들이 번번이 일어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뒷 챕터에서 다시 나누겠다. 혹시 자신만의 커뮤니티 하우스를 열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잠깐만 그 결정 붙들리고 있어보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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