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누구에게나 안락한 휴식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집은 피하고 싶고,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여름이면 바깥보다 더운 더위와 싸워야 했고, 겨울이면 차디찬 얼음 동굴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절약을 실천하던 아빠는 에어컨을 구입하고도 틀지 않았고, 겨울이면 보일러를 켜지 않고 전기장판으로 한파를 이겨내야 했다.
이해되지 않던 아빠의 행동들로 엄마와 동생들과 나는 집다운 기능을 하지 않는 집에서 한숨과 게으름, 포기를 배웠다. 거기에 아빠의 술주정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말보단 고성이 공기를 떠다녔고, 때론 고성보다 침묵이 나를 더 옥죄여왔다. 엄마는 그런 아빠 옆에서 늘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한숨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었고, "도망칠 수 없다"는 포기였다.
엄마의 체념과 포기를 느낀 순간, 집이란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단 걸 깨달았다. 현관문을 열기 전 문에 귀를 대어보던 나는 때론 고성보다 침묵이 더 무섭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결혼이란 제도 속의 밧줄을 잡고서 집을 탈출했다. 결혼을 해야만 나올 수 있었던 그 집을 떠나 나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벽지를 고르고, 가구를 들이고, 모든 게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집이라는 공간이 낯설고 어색했다. 누군가 소리 지르지 않을까, 술병이 깨지진 않을까 늘 불안했다.
남편과 함께 사는 집은 나의 불안이 사치라고 생각될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여름이면 땀으로 범벅된 고단한 하루를 에어컨으로 날려버렸고, 겨울이면 따뜻한 공간에서 책도 읽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감정을 교환했다.
남편과 내가 만들어가는 집에는 사랑의 감정, 공감, 따뜻함이 채워지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집’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사랑을 배우고,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집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