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가족’이라는 말의 무게

by 고니비니SN

어린 기억 속 우리 가족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아빠, 엄마, 삼 형제가 함께 사는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문을 닫고 나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우리만의 비밀이었다.

아빠는 술을 자주 드셨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었던 아빠가 술만 마시면 돌변했다. 목소리는 커지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침없이 화를 냈다. 대체로 삶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술을 찾으셨던 것 같다. 가장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술과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맞벌이로 늘 바빴다. 새벽같이 나가고 늦은 밤에야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가 술을 마신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술을 드셨어. 친구 집에서 놀다가 오던지, 학원에서 조금 늦게 집으로 와.”

엄마는 자신이 없는 집에서 삼 형제가 겪을 상황을 미리 내다본 듯 아빠와의 만남을 최소화하여 우리들을 보호하려 했다. 그것은 엄마가 우리를 지키는 방식이자 사랑이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을 때면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 해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엄마의 전화를 끊자마자 옷을 입고 재빠르게 집 밖으로 나간다. 혹여나 골목에서 아빠를 마주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골목길을 빠져나온다. 엄마는 늘 중간에서 상황을 수습하느라 분주했다. 엄마의 걱정과 불안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졌고, 그런 날은 엄마가 빨리 집으로 오시길 기도했다.

아빠가 술기운에 지쳐 잠이 드는 순간,

거실에서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면 비로소 안도감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빠는 생계를 위해 힘든 하루를 보냈고, 그 힘듦을 술로 해결하려 했다. 결국 아빠가 선택한 술로 아빠가 지키려 애쓴 엄마와 삼 형제는 숨죽여야 했다.

나에게 가족은 눈치와 피로 견딤의 연속이었다. 아빠, 엄마의 고단함 속에서 눈치를 배웠고, 두려움에 떠는 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피로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견뎌야 했던 지난한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겉보기엔 우리는 ‘정상적인 가족’처럼 보였다. 웃음 뒤에 아무도 모르는 긴장과 불안감,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나는 지금, 나만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다. 남편과 딸을 바라볼 때마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라 여전히 아프지만, 그만큼 내가 지금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은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족’은 희생의 결과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며, 아플 때 서로가 손잡아 줄 수 있는 마음이 편안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정상적인 가족’, ‘비정상적인 가족’이란 형식의 틀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표현하며, 이해와 존중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건강한 가족을 나와 아이 그리고 남편에게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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