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였던 시간

by 고니비니SN

임신 후, 병원을 갈 때마다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세상에 나올 때까지 숨바꼭질하듯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튼튼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마웠다.



12주 차쯤, 1차 기형아 검사를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전부터 간헐적인 하혈로 겁에 질려 있었던 터라, 검사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행히도 아이는 정상이었다.

정상이라는 말에 콩알만 해졌던 나의 심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뒤 2차 기형아 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불안과 걱정을 품고 검사실에 들어섰지만, 엄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건강하다는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엄마들은 10달 동안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참아야 한다니 새삼 엄마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임신성 당뇨 검사에서도 정상이 나왔을 때, 긴장으로 조여 있던 내 마음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워졌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출산뿐이었다.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마치 10년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마지막 초음파를 보러 가던 날,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산모님,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있어요, 다음 달에도 이 상태면 유도분만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잘 먹어야 해요. 아셨죠?”



막달까지도 이어졌던 입덧 탓에 많이 먹지 못했기에, 아이가 작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했지만, ‘유도분만’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불안을 가져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남편에게 과일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에게 단것을 먹으면 잘 자란다는 말을 들었기에 속이 울렁거려도 억지로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



유도분만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출산예정일만을 남겨두고, 음식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어느 화요일 저녁, 배가 뭉치고 진통이 시작되었다. 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본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괜찮아, 다 잘된다고 생각해. 걱정하지 마.”

하지만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통증은 점점 더 강해졌다.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자궁 문이 1cm밖에 열리지 않았다며, 아직 멀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처음 겪는 통증은 온몸을 경직시켰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병원 1층 의자에 앉아, 자궁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통증에 몸부림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아직 자궁문이 열리려면 멀었대. 뭐라도 먹어야 아이를 낳을 때 힘을 낼 수 있대.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뭐라고 좀 먹자.”

결국 엄마와 남편의 설득에 못 이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은 돌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문득 옆을 보니 엄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열 달 동안 지켜낸 것도, 엄마였다는 사실을.

나도 열 달 동안 엄마의 모든 에너지를 먹고, 이 세상에 태어났구나.



그 순간, 만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엄마는 그렇게 내 옆에서 열 달 동안 아이를 지켜내고 있었다.

딸의 손과 발이 되어, 온몸으로 나와 아이를 감싸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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