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병원에서 집에 돌아왔다. 불안한 마음에 드라마를 켰다.
옆에서 나보다 더 걱정하는 엄마에게 집으로 가 계시라고 말씀드렸다.
남편과 누워 드라마를 보는데, 점점 진통 간격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자기야, 나 진통이 잦아져. 5분마다 진통이 오면 병원 오라고 했지?”
말하면서도 온몸에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남편은 시계를 보면서 간격을 재기 시작했다.
“자기야, 지금 5분 간격인 것 같아. 병원 갈까?”
남편의 말에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기쁨보다 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부여잡아야 했다.
새벽 12시가 조금 넘어서 병원에 도착하여 내진을 받았다.
“산모님, 자궁문 2cm 열렸어요. 3cm는 돼야 출산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집으로 가시라고 하면 안 가실 거죠?”
웃으면서 말하는 간호사에게 애원하듯 집으로 보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이미 내가 어떤 성격인지 파악한 듯 무통 주사를 맞자고 했다.
출산 대백과 사전으로 보고 또 보고, 유튜브를 수없이 봤지만, 현실로 닥친 출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진통의 강도와 예측되지 않는 상황들이 공포로 다가왔다.
무통 주사에도 진통은 점점 심해졌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주기적으로 몰려오는 고통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참는 것뿐이었다.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자기야, 피곤한 거 같으니 좀 자.”
미안한 표정을 짓던 남편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옆방에서 들려온 찢어지는 비명이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자기야, 옆방 산모 곧 아기가 나올 건가, 바. 엄청 아픈가 봐.”
나도 곧 저렇게 될 것 같아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지니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극강의 통증은 비명마저 삼켜버렸다. 그렇게 진통과 눈물이 뒤섞인 새벽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새벽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된 통증은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간호사가 와서 무통 주사를 다시 주입하니 잠깐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전 9시쯤, 분만실이 분주해졌다.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곧 아기가 나올 거라며 호흡법을 가르쳐 주셨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시킨 대로 따라 해보는데도 숨이 차올랐다.
호흡 사이로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낳았겠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던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2015년 12월 9일 오전 9시 32분.
10개월 긴 기다림 끝에, 우리 부부는 수박이를 품에 안았다.
핑크색 모자를 쓴 아기가 내 옆으로 왔다.
눈을 찡긋하는 게, 마치 나에게 “엄마, 안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다 정상입니다.”
선생님의 정상이라는 단어를 듣기 위해 10개월 동안 내 몸과 마음, 모든 걸 쏟아부었다.
나는 아기를 보며 말했다.
“수박아, 엄마, 아빠에게 건강하게 와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