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두 칸짜리 신혼집에서 엄마, 남편과 동거가 시작되었다.
웃음과 행복이 가득할 거로 생각했던 공간은 울음소리와 분주함으로 가득 찼다.
임신 중 반복해서 읽었던 육아 대백과사전은 실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엄마 말보단 책대로 아이를 키우고자 애썼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벽은 모유 수유였다. 밤낮 구분 없이 두 시간마다 눈을 떠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려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잘 먹지 못해 우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달래며 인내의 끝을 헤맸다. 허리는 점점 굽고, 눈은 감기고,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이렇게 못 먹는데 모유 수유를 꼭 해야 할까?”
“자기가 많이 힘들면 분유 먹여. 요즘 분유도 잘 나와서 괜찮아.”
남편의 배려 담긴 말이 고마웠지만,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모유 수유의 장점들, 책 속에 적혀 있던 수많은 긍정적인 메시지가 머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현실 앞에선 모유 수유를 포기하고, 분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엄마가 도와줄 테니 조금만 더 먹여보자. 모유 수유가 아이한테도 좋지만, 산모 회복에도 좋아.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 말 이후, 엄마는 내가 모유 수유를 할 때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아이를 내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머리를 가누지 못하는 아이 머리를 손목으로 받치느라 손목이 욱신거리고 아렸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내 자세를 살펴주느라 정작 엄마의 허리가 휘었다. 그렇게 엄마는 뒤에서 조용히 날 지탱해 주었다.
엄마의 배려와 희생으로 모유 수유를 10개월째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등이 가려웠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상처가 날 때까지 벅벅 긁었다.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엄마에게 연고를 발라 달라고 했다. 나의 등을 본 엄마는 “상처 모양이 대상포진 같아, 긁지말고 피부과를 다녀와.”라고 했다.
피부과에 도착해 진료를 받자, 선생님은 오른쪽 등과 가슴 밑에 있는 수포들을 살펴보시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제일 먼저 모유 수유가 떠올랐다.
“선생님, 지금 모유 수유 중입니다. 수유를 계속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기가 수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서 전염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항생제를 복용하셔야 해서 중단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무너져 내렸다.
10개월 동안 내 품에 안겨 엄마 젖만 먹으며 자라온 아이였다. 매일 눈을 맞추며 젖을 물리던 그 시간을 갑작스레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스러웠다. 아직 분유 한 번 먹어보지 않은 아이가, 갑자기 분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 앞에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번 수유를 시작하면 기본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을 물고 있는 아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했다.
“제발, 빨리 먹고 끝내자.”
나의 바람이 얼굴에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이 나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1년간 수유하겠다는 나의 목표는 2개월을 눈앞에 두고 끝이 났다.
되돌아보면 이 긴 여정이 가능했던 건 오롯이 친정엄마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곁에서 도와주시고, 딸이 쉬도록 살뜰히 챙겨주셨다.
아이가 10개월 동안 먹은 모유는 단지 나의 노력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할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가득 담긴, 그 어떤 음식보다 소중한 최고의 한 끼였다.
이제 수유는 끝났지만, 10개월 동안 아이와 교감하며 쌓아온 시간 속에서 진짜 ‘모성애’가 시작되었다는 걸 느낀다.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추며 젖을 물리던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결국 내 안에 ‘엄마’라는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모성애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소중한 시간을 끝까지 함께 해주고, 내 곁에서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준 친정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