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았던 2주 간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를 안는 일조차 불안했던 나는, 친정엄마 품에 안긴 생명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순간,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반짝이던 오너먼트와 장식들이 보였다.
오너먼트 하나하나에 남편의 마음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임신과 출산의 시간 동안 수없이 흘렸던 눈물, 숨죽이며 삼킨 불안과 두려움이 그 반짝이는 빛에 조금씩 위로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다.
조리원 퇴소 첫날, 아이는 잠을 자지 않았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배고 고픈 건지, 기저귀가 젖은 건지, 몸 어딘가가 불편한 건지 도무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지금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조리원에서도 나오지 않던 젖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젖이 잘 나오지 않자 아이는 죽을힘을 다해 목청껏 울었다. 나는 점점 미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온 가족이 밤을 새웠다. 피곤한 눈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밤새 나와 아이를 번갈아 가며 돌본 친정엄마를 바라봤다.
“엄마, 피곤하지? 잠시 눈 좀 부쳐”.
나의 말에 엄마는 자신은 괜찮으니,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고 잠을 자라고 했다. “
‘내 의지대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때 알았다.
아이가 젖을 물지 못하자, 젖몸살이 시작되었다. 출산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젖이 점점 딱딱해지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앉거나 걷는 것도 힘겨웠다. 그런 몸으로 또 하나의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결국 참다못해 출장 마사지를 불렀지만,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틀 밤을 꼴딱 새우고 결국 아이를 안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간호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설명도 하기 전에 눈물이 앞섰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이틀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기가 환경과 온도 변화에 예민할 수 있어요. 엄마 잘 못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등을 다독여 주셨다.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에 아이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쓸려 내려갔다.
선생님은 아이를 진료실 침대에 눕히고 조심스럽게 등을 쓸어주셨다. 선생님의 손길 아래 아이는 세상 평온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틀 내내 우느라 지친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니 또 한 번 눈물이 났다.
아이가 자는 동안 조리원으로 올라가 젖몸살 마사지를 받았다. 전문가 선생님의 손길은 마치 어둠 속에 내리쬔 한 줄기 빛이었다. 단단하게 굳어 있던 통증이 순식간에 풀렸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틀 동안 지옥과 천국을 오간 경험 속에서 나는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도, 영원할 것만 같던 행복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을 말이다.
약하디 약한 초보 엄마는 이렇게 온몸으로 부딪히고 경험하며, 조금씩 엄마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
한 아이의 엄마로, 새로운 나로 태어난 뜻깊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