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를 하다 보면 언젠가 이유식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책에서는 생후 6개월 무렵부터 이유식을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아이가 5개월이 되자 본격적으로 이유식 준비에 들어갔다.
저울, 계량스푼, 도마, 칼 등 이유식에 필요한 도구들을 하나둘 장만하고, 멘토가 되어줄 책도 함께 구매했다.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책을 정독하며 계획을 세웠다.
그중에서도 “육수를 미리 큐브에 얼려 두면 시간이 단축된다.”라는 팁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다시마와 멸치를 사다가 육수를 끓이고, 식힌 후 조심스럽게 큐브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
손목 통증으로 칼질이 어려운 나를 대신해 엄마와 남편은 다진 채소를 큐브로 만들어 주었다.
작은 재료 하나하나를 정성껏 다져내는 손길에 고마움이 묻어났다. 이유식은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조금씩 엄마와 남편의 도움으로 ‘우리의 일’이 되어갔다.
드디어, 첫 이유식 날이 다가왔다.
시작은 쌀미음이었다. 시판 쌀가루에 생수를 붓고, 덩어리 지지 않게 조심조심 저으며 끓였다.
따뜻하게 완성된 미음을 예쁜 이유식 식기에 담아 아이 앞에 놓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어, 딸의 작은 입 앞으로 가져갔다.
처음 접하는 맛에 아이는 입을 오물오물하며 탐색을 시작했다. 그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순간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듯했다. 다행히 입맛에 맞았는지, 아이는 금세 입을 쩍 벌려 더 달라고 재촉했다.
엄마의 느린 속도에 답답했는지 결국 숟가락을 뺏어 본인이 직접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는 말 그대로 ‘먹방’이었다. 숟가락은 손보다 얼굴에 더 가까이 갔고, 입에 들어간 것보다 흘린 미음이 더 많았다. 딸은 그릇에 얼굴을 파묻듯 미음을 먹었고, 나는 멘붕 상태로 물티슈를 꺼내 들었다. 손, 얼굴, 심지어 식탁까지 하나하나 닦아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첫 이유식은 그렇게 흘리는 자와 닦는 자의 줄다리기였다.
본격적으로 이유식이 시작되자, 다양한 채소를 조금씩 먹이기 위해 나는 책을 더 자주 펼쳤다. 입이 짧았던 나를 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기에, 식단 구성과 조리법 하나하나에 더 신경을 썼다.
책에 나와 있는 재료의 용량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저울을 끼니마다 필수 도구였다. 분량을 맞추고, 조리 순서를 지키고, 그날그날 큐브를 해동하면서 이유식 중심으로 하루가 흘러갔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이유식을 잘 먹어 주었다.
물론 매번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개월 수에 맞는 정량을 다 먹이기 위해 식탁 앞에서 1시간이 넘도록 실랑이를 벌이는 날도 있었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나는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아이의 환심을 사려 애썼다.
2돌이 가까워졌을 무렵, 친정엄마가 손녀의 첫 김치를 담갔다. 바로 시원한 물김치였다. 첨가물 하나 없이 재료 하나하나를 고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만든 물김치.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그 첫 물김치를 아이는 너무나 잘 먹었다. 그 후로 엄마는 갖가지 나물을 무치고 볶아, 하나둘 아이의 식판 위에 올려주었다.
내 아이가 채소를 골고루 먹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끝과 아낌없는 사랑 덕분에 그 바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지금도 파프리카, 브로콜리, 오이, 당근을 생으로 씹으며 맛있다고 말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그 모든 시작이 외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었다는 걸 느낀다.
이유식의 시작은 지저분하고 정신없는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세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지금 아이의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