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이에게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의 목소리에 세상 무해한 미소로 반응하는 아이를 보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나 혼자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배고파?”, “어디가 불편해?”, “이건 뭐야?”, “코 낸낸 하까?” 같은 말을 끝도 없이 건넨다.
돌아오는 답변은 옹알이와 해맑은 웃음이다. 그렇게 수다쟁이가 된 듯한 하루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그런 시간이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외로움도 몰려오지만, 아이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 다시 힘을 낸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갈 수 있었던 건 조리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같은 날 태어난 세 아이, 그리고 하루 늦게 태어난 또 한 아이.
네 명의 아이는 각자의 엄마들 덕분에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단톡방 속 이야기.
“어제 3시간 잤어.”, “오늘 너무 힘들었어.”, “열나서 병원 가는 길이야”, “나도 그래” 같은 메시지들이 오고 갔다. 그 한마디 한마디는 상처에 붙이는 밴드보다 더 빠르게 내 마음을 치료해 주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이 길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존재들이었다. 가끔은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해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로 자라기 시작하면서, 단톡방은 위로와 함께 불안의 씨앗이 되기로 했다. 누구는 기기 시작했고, 누구는 처음으로 “엄마”를 말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 한쪽에 불안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아이는 왜 아직 말을 안 할까?, 언제 걷지? 혹시 평생 말을 못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혼자서 키운 불안에 점점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남편이 다가왔다.
말없이 내 손을 잡더니, 따뜻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아이마다 성장 속도가 달라. 자꾸 비교하다 보면 결국 네가 지쳐. 아이도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곧 말을 시작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나의 불안을 달랜 남편의 말에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기다려 보자고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평소처럼 거실에서 아이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말을 걸고 있었다. “이거 뭐야? 어디 있어? 이렇게 말하며 놀던 중, 아이가 내 말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잘 알아듣는데 말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아이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아빠”라고 했어? 다시 말해볼래?
나의 물음에 아이는 또렷하게 “아빠”하고 말했다.
비록 ‘엄마’가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는 세상 어디에도 들어본 적 없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소리였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순간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그 속도는 결코 느린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아빠’가 언젠가는 ‘엄마’가 되고, ‘사랑해’, ‘고마워’가 되는 그날까지 나는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 주자고 다짐했다.
언젠가 아이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하는 날,
그날이 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귀로 아이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끝까지 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