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품을 떠나는 용기

by 고니비니SN

출산 이후, 내 몸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허리와 골반 통증, 기력 없는 몸.

아이가 울면 안아주는 일조차 혼자선 버거웠다. 친정엄마와 남편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육아해 낼 수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 육아 독립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다시 이사를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이가 뛰어놀 공간도, 마음 놓고 산책할 환경도 부족했다. 나아진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바람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이사는 단순히 거리나 가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한 번의 이사로 친정엄마는 매일 왕복 두 시간 넘게 출퇴근하고 있었고, 또다시 삶의 균형을 흔들 수도 있는 변화 앞에서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후 후보지는 두 곳으로 좁혀졌다.

하나는 친정집 옆, 20년 된 오래된 아파트였다. 집은 낡았지만, 근처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아이에게는 좋은 환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친정엄마와는 도보 5분 거리였다. 단점은 완전 수리를 하여야 해서 비용이 더 든다는 점이고,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 왕복 두 시간 반이나 걸린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남편 회사 근처, 입주 4년 차의 신축 아파트였다. 단지 내에 차가 다니지 않아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었고,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도 도보권에 있었다. 남편 회사도 차로 15분 거리. 문제는 친정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시려면 1시간 이상을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점이었다.



남편과 긴 상의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는 내가 친정엄마 곁을 떠나기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가 건강 때문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직도 혼자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었고, 내 몸은 여전히 예전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신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 당신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나도 어머님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머님도 연세가 있으셔. 언제까지 도움을 받을 수는 없잖아. 이번 기회에 운동을 시작해서 이사 전에 몸을 조금씩 만들어보는 건 어때? 그리고 어머님은 자기가 먼저 손을 놓지 않으면, 끝까지 아이를 봐주실 분이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어머님을 위해서도 이번에 우리 독립해 보자.”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엄마가 아이만 돌보고 있는 게 아니라 다 큰 나까지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깨달았다.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엄마가 다시 엄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손을 놓아야 할 때라는 결심이 들었다.


나의 결심에 남편은 결혼할 때 비상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 내밀었다.

“이걸로 운동 시작해. 운동해서 예전처럼 자신감 넘치는 너의 모습을 찾아.”



나와 남편은 단체 운동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1대 1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남편이 퇴근한 뒤 주2-3회 운동을 시작했다. 임신 중 무려 7개월을 누워 보낸 내 몸은 이미 근력이 바닥이었다. 운동 중간중간 허리 통증이 밀려왔고, 강사님은 복근이 부족하여 그렇다며, 근육을 천천히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25회의 필라테스 수업이 끝났을 무렵, 우리는 남편 회사 근처로 이사를 결정했다. 단지 안에는 놀이터가 무려 4곳, 지상 주차장이 없어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곳에서 환하게 웃으며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우리의 결정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많은 동네로 이사 온 탓에, 미처 어린이집 입소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예상 밖의 대기로 아이는 입소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3개월의 경제적 여유는 불안과 압박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리적 압박감이 커졌다. 결국 주말이라도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알바보다는 지금은 운동을 조금 더 하자. 근처 강변 산책로에서 몸을 좀 더 만드는게 먼저 아닐까?”


하지만 나에겐 더 이상 ‘나중’이라는 말이 여유롭게 들리지 않았다. 책임감의 무게는 하루하루 나를 옥죄여왔고, 결국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예전부터 커피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체력적으로 무리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결국 자격증을 손에 쥐고, 동네 커피숍에서 주말 알바를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난감보다 소중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