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보다 소중한 선물

by 고니비니SN

어릴 적, 우리는 장난감 없이도 잘 놀았다. 흙과 돌, 풀 한 줌이 장난감이었다.

동생들과 돌로 풀을 찧어 반찬을 만들고, 모래를 뭉쳐 밥을 지었다. 엄마, 아빠 역할놀이는 우리에게 최고의 놀이였다. 나에겐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는 동생들이 있었다.



그 시절, 아빠는 지인들에게 얻은 옷을 우리에게 입히셨고, 그것이 새 옷이든 아니든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다. 아빠는 과일 모양 종이 뒤에 자석이 붙은 교구를 어디선가 구해 오셨다. 우리는 그것으로 시장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사과, 포도, 딸기 같은 종이 과일을 손에 쥐고 동생들과 돌아가며 가게 주인과 손님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이날이 되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친구들이 자랑하던 새 장난감, 특히 여자 아이들이 받는 마론 인형을 보면 나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어린이날은 보통의 하루였다. 나와 동생들 누구 하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부모에게 조르지 않았다. 주어지면 받고 없으면 조용히 지나가는 그런 날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보다 2년 뒤 결혼한 여동생은 아이 없는 둘만의 결혼 생활을 선택했다. 아직 미혼인 남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내 딸은 친정 부모님에게 단 하나뿐인 손녀가 되었다.



친정 식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어느 날, 이마트 장난감 판매대에 들렀다. 손녀가 고른 커다란 장난감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빠는 눈빛으로 나에게 사주겠다는 신호를 보내셨다.

나는 정중히 말렸다.

“아빠, 집에 장난감이 많아서 스트레스예요. 책을 사주는 건 어때요?” 나의 말에 아빠는 조용히 대답하셨다.


“이 나이 땐 장난감이 있어도 또 갖고 싶은 거다. 하나만 더 사주자.”

아빠의 말에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아빠, 나랑 동생들은 장난감 하나도 안 사줬잖아요. 그런데 지금 집에 장난감이 발에 치일 정도인데도 또 사줘야 해요? 나도 어릴 때 마론 인형 갖고 싶었는데 말 한마디 못 했어요. 그럼 나도 장난감 사주세요.”

따발총 쏘듯 쏟아붓는 딸의 말에 아빠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멍한 눈빛 속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아빠가 장난감을 한 번도 안 사줬니? 그땐 먹고살기도 바빠서....”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엄마는 내 손을 조용히 끌며 말했다.

“지나간 일 자꾸 꺼내면, 너도 아빠도 힘들잖아. 이제 그만해라.”

엄마의 말에 남편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자리를 옮겼다.



아빠는 말없이 손녀가 고른 장난감을 들고, 손녀의 작은 손을 잡고 걸어 나가셨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지금 아빠가 잡은 손은 손녀의 손이 아니라, 어릴 적 장난감 하나 갖고 싶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던 나의 손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빠는 어쩌면 지금, 그때 나에게 해주지 못한 마음을, 손녀를 통해 나에게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표현이 서툴렀던 아빠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손을 잡고 계셨다. 그때 하지 못한 사랑을 전하려고 조심스레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장난감 대신, 나에게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고, 더 소중하며, 평생을 함께할 영원한 단짝인 동생들을 선물해 주신 건지도 모른다. 장난감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그 시절 나와 함께 웃고 뒹굴던 동생들과의 추억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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