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치료한 어금니의 아말감이 떨어졌다.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잇몸은 약해져 있었다. 출산과 육아에 온몸이 지쳐 있었다. 통증은 있었지만, 하루 종일 신생아를 돌보느라 나 자신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간이었다.
떨어진 아말감 자리에는 음식물이 자주 끼었다. 시리고 욱신거리는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나는 그마저도 외면하며 1년을 버텼다. 모유 수유가 끝나고 젖몸살도 사그라지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치과로 향했다.
집 앞 치과 문 앞에 서자 가슴은 마치 방망이질하듯 요동쳤다. 오랜만에 마주한 치과 진료실 앞에서 나는 두 손을 꼭 쥐고 기도했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상태를 빠르게 살피고는 차갑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0년 전 아말감 치료한 부위는 모두 제거하고 다시 치료해야 합니다. 아말감이 떨어진 어금니는 신경이 손상돼 신경치료가 필요합니다. 비용과 치료 일정은 상담실에서 안내받으세요.”
마치 기계가 말하듯 딱딱하게 이어지는 설명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치통보다 그 말들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상담실에서 마주한 상담 선생님은 부드러운 말투로 설명을 이어갔고, 마지막에 조용히 말했다.
“총 치료비는 320만 원입니다.”
“네? 320만 원이요?
확인하듯 다시 묻는 내게 선생님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보다 돈이 더 아프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물었다.
“치료는 받았어?”
나는 상담 내용을 이야기하다, 마음속에 묵혀뒀던 감정을 쏟아냈다.
“엄마, 10년 전에 할머니가 이 치료해 줬잖아. 그때 은으로 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텐데.... 아빠가 싼 아말감으로 하자고 해서 결국 지금 다 뜯어내고 전부 다 치료해야 한 대. 그때 10년 뒤에 치료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
엄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치료비가 얼마나 든대?”
“320만 원이래. 애도 태어났고, 외벌인데 갑자기 그 돈이 어딨어.”
계속되는 딸의 하소연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퇴근한 남편과 긴 이야기를 나눴다. 돈이 걱정된다는 나에게 남편은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말했다.
“치료받자. 참을 수 없어서 병원 간 거잖아. 돈보다 건강이 먼저야.”
그날 밤,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가 많이 아팠다며? 엄마한테 얘기 들었다. 돈은 걱정하지 말고 치료받아라. 그때 아빠가 돈이 너무 없어서 싼 아말감으로 하자고 했던건데.... 아빠가 미안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고였다. 원망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허물처럼 무너졌다.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 삼 형제를 키워야 했던 부모에게 아이들 밥 먹일 걱정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당장 생명이 위태롭지 않다면, 병원은 늘 나중이었다. 치아 하나쯤은 사치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어도, 사회인이 되어도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아이를 바라보며 이제야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진심도 가려질 때가 있다는 것을.
그 시절 아빠가 가진 최선이 바로 아말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전화 한 통에 가슴을 무겁게 누르던 돌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다. 걱정으로 잔뜩 굳어있던 마음이 구름처럼 몽글몽글 풀어졌다. 치료를 받는 내내 통증은 심했고, 몸은 괴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여유로 가득 찼다.
어릴 적 부모의 무관심과 절약 앞에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다. 친구들과 밥 한번 먹지 못하는 용돈은 늘 나를 작아지게 했다. 늘 돈 이야기로 가득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절약을 배웠지만, 돈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도 함께 배웠다.
아빠는 그 모든 부족함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엄마는 매일 자식들을 위해 하루를 견뎌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느낀다.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지만, 누군가의 진심을 오해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10년 전 떨어진 아말감 하나로 그 시절 아빠의 숨겨진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진심이 내가 살아온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치료해 주었다.